“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이, 어이허”
상두꾼들의 목소리가 애절하기만 하다. 이 소리는 드라마에서나 가끔 들을 정도로 요즘에는 듣기 힘든 소리이다. 이 소리를 10년간 줄곧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합덕 교동에 살고 있다.
농촌인구가 고령화되기는 시골이나 읍면 상가지역이나 매한가지. 그래서 옛날 그 훈훈한 인심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는 법. 합덕 교동만큼은 그렇지 않다.
상가집만 찾아다니는 이상한(?) 젊은이들. 바로 교동청년회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안에 초상이 나면 어김없이 이들 몫이다. 상가집 밤샘에서부터 잔심부름, 상여를 매는 일, 묘지를 다지고 묘소를 꾸미는일등 모든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잘한다.
86년 3월 합덕읍 교동1, 2구 청년들(25~40세) 20여명이 모여 마을안에 궂은 일을 자처하고자 의기투합하여 교동청년회를 결성했다.
초대 정재무(성진상회 경영)씨, 2대 김영준(분식점 경영)씨, 3대 차영성(레스토랑 경영)씨, 4대 복진영(축산업)씨에 이어 5대 현회장 김택열(대건신협근무)와 총무 이봉호(대우자동차 신평영업소)씨가 교동청년회를 이끌고 있으며 지금은 진짜 뜻과 마음이 맞는 4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45세가 넘게 되면 고문이 되어 뒤로 한걸음 물러서 교동청년회를 보좌해주고 이끌어주는 큰형님 같은 구실을 해주고 있다.
그동안 많은 상가집에서 일을 해왔지만 그중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한 불우한 가정에 쌀과 생활비를 보조해주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집 가장이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공동묘지에 묘소를 어렵게 마련하고 발인하려던 날, 밤사이 내린 많은 눈으로 묘지표시해 놓은 곳을 잃어버려 전회원이 한나절동안 눈을 헤치며 헤매 간신히 장례식을 마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상가집 일이 결코 쉬운 일도, 소홀히 할 일도 더더욱 아닌만큼 최선을 다해보지만 여름철이나 기상이 안좋을 때는 더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엄격한 회칙과 회원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으로 상호협조하며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이들은 상가집일 외에도 회원들의 주머니를 털어 정기적으로 마을 노인들을 모셔서 조촐하나마 경로잔치도 벌인다. 손수 장만한 음식과 국악패를 불러 한때나마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이 있으면 성심껏 돌보며 지낸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며 마을을 위하는 일이라면 더 많은 수고도 감수하며 함께 사는 교동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이들에게 있다.
아무리 쉬운 일도 남의 일이라면 하기 싫어하는 요즘 세상. 불신풍조가 만연한 이 시대에 교동청년회는 작지만 소중한 불씨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광고부 안석규 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