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지난날 우리는 우리 이웃 형제자매인 장애인을 위하여 무엇을 해왔으며 앞으로는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잠시라도 틈을 내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
국문학자이며 고려대 초빙 교수인 정창권 교수의 저서 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할 부분을 옮겨 본다.
“전통사회에서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장애인이라 하여 천시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직업이 주어졌으며, 또 양반층의 경우는 과거를 보아 관직에 오를 수도 있었다. 나아가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때때로 이름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이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을 살펴보면 선조37년(1604년) 초계 지방의 정희개란 아전의 어머니가 시각장애인이 된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임금이 예조에 명하여 효자로 정표(旌表 세상에 널리 드러내어 알림) 하도록 하였다 한다.
반면 중종 35년(1540)에는 유식이란 자가 맹인 아버지를 물 속에 집어넣고 몽둥이로 살해한 사건이 있자 임금이 그를 처형함은 물론 그가 사는 고을의 읍호까지 강등시켰다는 기록이있다.”
그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에 대해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했을 뿐 아니라 폐질자와 독질자에겐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어야 한다는 정약용의 지적도 단적인 예이다.(정약용 「목민심서」)
우리는 흔히 전통시대와 사회복지를 그야말로 임시방편적이거나 군주의 생색내기에 불과 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에서 엿볼 수 있듯이(수많은 기록 중 일부만 소개) 고려와 조선정부도 극빈자와 함께 장애인에 대해서도 다양하고 지속적인 복지정책을 펼쳐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물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장애인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래서 장애인은 물질적 생활고와 함께 사회적 천대를 받으며 주위 도움도 하나 없이 고통을 홀로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이젠 같이 살아야 한다. 비록 처음엔 약간의 진통이 따르겠지만, 국력에 걸맞게 서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함께 살아야 한다.
서로 더불어 사는 방법, 공존을 터득할 때 우리 모두 반쪽자리 인생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본인은 지체 장애인 후원회장으로 추대받은 이후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보는 편견이 여전함을 느껴왔다.
반면 장애인, 그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잠재력과 용기, 건전한 생각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늦었지만 4월23일, 같은 뜻을 가진 소수의 회원들이 모여 당진군 지체 장애인 후원회를 만들었다(장애의 구분 없이 동참을 원칙으로 한다).
지켜봐 주시고 조언 부탁드리며 끝으로 우리 장애인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갖도록 군, 기업, 군민 모두 내 일처럼 생각하고 실천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