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엽(머리의 앞쪽)에 총알이 박힌 채 50여년을 살아온 이문영(78, 신평면 한정리, 오른쪽)씨와 그의 부인 고순문(77)씨. 의사 소견에 따르면 5㎜만 더 박혔어도 이씨는 목숨을 잃을 뻔 했다.
▲ 전두엽(머리의 앞쪽)에 총알이 박힌 채 50여년을 살아온 이문영(78, 신평면 한정리, 오른쪽)씨와 그의 부인 고순문(77)씨. 의사 소견에 따르면 5㎜만 더 박혔어도 이씨는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총을 맞을 때 느낌이 있으면 여러분들은 산 것이다. 그러나 느낌이 없다면 여러분은 죽는다. (18연대에서 훈련병을 교육했던 어느 교관)”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1950년대 초 온양(현 아산시)에 위치해 있었던 ‘18연대’에서는 훈련병들에 대한 신병교육이 한창이었다.

교육 중 18연대의 한 교관은 이문영(78, 신평면 한정리)씨를 비롯한 훈련병들에게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5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씨의 귀에서 아주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전쟁 중 인간의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알려주는 것 같은 이 말을 이씨가 생생히 기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씨 자신이 총에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총에 맞았다면 전쟁 중 일어나는 흔한 일로 치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리부분을 타격한 탄환이 지금도 이씨에 머리 속에 남아있기에 이씨는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4년 12월 자전거를 타고 신평에 갔다 오는데 집 앞에서 의식을 잃었어. 며느리(김영주, 45)가 발견해 한마음외과(원장조규찬)에 갔지. 원장이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하더군. 그뒤 원장이 이렇게 말했어.”

“할아버지, 머리에 실탄 박힌 것 알아요?”

탄환이 박힌 채로 50여년을 살아온 이씨의 사연은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연대에서 6개월 가량의 훈련을 마친 후 이문영씨의 부대는 전선에 배치된다. 이씨에 따르면 한밤 중에 느닷없이 이동한다며 부대에 비상이 걸렸고 이북인 개성 근방의 옹진이라는 곳으로 부대가 이동한다. 그뒤 ‘옹진전투’가 벌어졌고 총성소리와 함께 이씨는 정신을 잃는다.

“눈을 떠보니 한 아주머니가 ‘정신이 나느냐?’고 묻더군. ‘어떻게 된 거냐고 내가 묻자’ 3~4명의 남자가 데리고 왔다고 설명해 주었어.”

그뒤 이씨는 인민군에게 들킬까 한복차림으로 몸이 나아질 때까지 치료를 해야 했다.

몸이 나아져 고향인 한정리로 내려왔을 때 이씨의 모습은 거의 ‘거지’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집에는 전사통지서가 배달돼 있었고 이씨의 18연대는 해체된 상태였다(해체된 이유는 알지 못함).

머리에 총상을 입은 뒤부터 이씨는 5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두통과 어지러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증상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자 ‘풍이 오는 것’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4년 집 앞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 계기가 돼 원인을 찾게 됐고 막상 원인이 머릿속에 50여년 동안 박혀 있는 ‘탄환’이라는 사실에 가족들은 기가 막혔다.

“원인이 탄환일 줄이야 상상이라도 했겠어요? 진작 검사를 시켜드렸어야 했는데 사실을 알게 된 뒤 후회도 했죠.”

며느리 김씨의 말이다.

정작 머릿속에 총알이 박힌 채 한평생을 살아온 이씨는 오히려 담담했다.

“남들이 볼 땐 무식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겠지. 그러나 난들 알았겠나?”

“지금 이 순간 그 교관의 말이 생생하게 맴도네. 총소리가 난거고 총에 맞았다는 것을 느낀거고 그리고 난 이렇게 살아있는 거네(웃음).”

지난 3월15일에는 이씨 앞으로 국가보훈청에서 보낸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참전유공자 증서였다. 또 상이용사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탄환을 제거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씨는 진통제에 의지해 살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