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당진에 첫발을 내딛던 때에는 시험철만 되면 가정방문이 정례화 되어 있었다. 한 학급의 학생이 현재의 두 배 정도 되다보니 학생들을 일일이 다 방문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었다. 궁리 끝에 동리별로 묶어 며칠간에 걸쳐 집집마다 몇 분씩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선생님 대접해야 한다고 아이를 시켜 점방에서 가져온 사이다를 따라주시던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이다. 서울서 내려 온지 몇 개월 안 된 나로서는 그 마음들이 너무도 따뜻했다. 인사를 나눈 직후 마루에 걸터앉아 학생들의 생활습관과 학부모들의 바람을 들으면서 슬쩍 슬쩍 곁눈질로 가정형편을 살피는 정도였다.

이렇게 한 나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영락없이 파김치가 되고 만다. 어떤 때는 버스를 놓쳐 어두운 저녁 시골길을 서 너 시간씩 걸어서 집으로 들어올 때도 간혹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못할 것 같은 고생 그 자체였었다.

그러나 가정방문의 효과는 학생들의 인사성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과 학생 교사 간에 두터워진 친근감에 있다. 이는 학생의 부모와 교사가 함께 자리한 것을 본 아이들이 행동에 더욱 조심하게 되고 이전 보다 더 예절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 이후 언제부턴가 가정방문은 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 학생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 부모님들과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결손가정과 결식학생들, 또 폭력학생들이 조직화되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이 시점까지 우리의 학생들은 학교와 학부모들 모두로부터 분에 넘치는 자유로움(?)을 만끽해왔다. 이는 가정방문이라는 연결고리의 단절로부터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가정방문이 있던 시절에도 학교폭력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교사와 학부모가 가정방문이라는 고리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서로 노력하는 가운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가정방문은 학생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하나 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다시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정방문을 부활키로 했다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조치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을 통해 학생들이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활용되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 skyhochun@hanmail.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