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강초 40회 동창회의 온라인 카페엔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소들강문의 황발이 추억 하나만 있으면 그 카페에 올라온 글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곳에선 이름만 들어도 어릴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리운 이름들과 글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6월 카페를 개설한 우강초 40회는 오프라인에서도 잘나가는 동창회다. 지난 6월 총문회때에는 기수동창회 중 가장 많은 70여명이 모이기도 했다. 1년에 두차례씩 정기모임을 갖고 서울 동창회는 분기별로 모임을 갖는다. “한번 모일때마다 보통 4,50명씩 참여할 정도로 결속력이 높다“고 서울회장 서승원씨가 자랑한다.
57년생. 고향과 옛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십줄 문턱의 나이가 이들을 모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우강초 40회가 특히 잘나가는 데에는 온라인 카페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카페가입 회원 55명, 1일 조회수 평균 150건, 평균 글 게시건수 15건, 다음 동문회 카페 18만4500개 중 600 등(상위 0.3%) 등이 우강초 40회 카페의 성적이다. 카페운영자 허충회씨는 “카페를 운영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라면 수시로 대화가 가능하고 애경사에 대한 전달이 빨라 유대가 돈독해 졌다는 점”이라며 “초기엔 주로 유머들이 많이 올라왔는데 요즘은 사는 이야기들도 많이 한다”고 소개했다. 동창들이 올린 글 한 건에는 보통 10건 이상씩의 댓글이 붙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충청도 사투리의 본고장 당진 출신들 답게 사이트는 질박한 사투리로 맥질 되어있다. 충청도 사투리의 진가를 알고 싶으신 분들은 주저말고 우강초 40회 사이트에 들어가 보시라. 보기만해도 정겹고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강초 40회 cafe.daum.net/ukang40abc
서울회장:서승원
당진회장:김재각(원치리)
카페운영자:문봉호, 허충회, 서승원
카페에 남긴 어느 동창의 글
그때 왜 내가 돌을 던졌을까
우강 시절, 어느날 나는 어떤 남자아이를 향해 돌맹이를 던졌고 그 돌은 그 아이를 빗겨가 유리창을 쨍그렁 깨뜨렸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런일인가. 그애 머리가 깨졌더라면... 아휴~). 순간 호된 꾸지람도 듣고 유리창 값 물어내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찔했고(그때 유리창 값이 만만치 않았음) 조바심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ㅡ
며칠이 지나도록 나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날 오라 가라 하지 않았고 유리창 값 얘기도 들리지 않았다. 타는 조바심속에 하루하루 지내는데 옆에서 불쑥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야, 너 때미 나 무쟈게 얻어맞고 유리창 값 물어냈다” 누군가 하고 쳐다보니 구 충 회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휴~됐다’하는 안도감과 한없이 느껴지는 평안함 뿐이었다. 그후ㅡ
조금씩 커가면서 그 일은 문득문득 떠올랐고 마치 믿음직한 오빠처럼 나쁜 애들 패주고 못된 짓 하는 애들 막아주는 의리의 사나이로 기억되면서 ‘그때 그 친구가 내 대신 많이 혼났구나. 사과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침 동창회의 장이 마련되어 몇 번인가 만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사과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어쩜 그리도 싸늘하게 쌀쌀맞게 나를 쳐다보던지 한마디 말붙일 엄두도 못내고 그냥... 정말 정말 사과하고 싶었는데...
멋진 가족과 함께 카페에 등장한 친구의 모습 보고 무척 반가웠어 ‘드디어 사과할 수 있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이제서야 카페의 한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쉰고개를 눈앞에 두고서야 사과의 변을 늘어놓는 이 사람의 주변머리를 그냥 웃어넘겨 줄 수 있을까. 그때 미안했어 친구야. 그때 내가 왜 돌을 던지게 되었는지는 몰라. 구충회는 알고 있을까? 카페에 흔적이 보이지 않아 카페나들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충회가 이 글을 보아주길 바라며.... ㅡ여리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