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당진군에서, 혹은 이 지역 출신으로 친일행위를 한 이종린, 인태식 등 인사들의 명단이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경술국치 95년이 되는 지난달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1차명단 3090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친일인사’ 명단은 해방 이후 처음 시도된 대규모 친일인사 선정작업의 결과로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판검사, 종교, 언론, 문화예술 등 모두 13개 분야에 걸쳐 선정됐다. 물론 이 중에는 당진군에서 관료를 역임했거나 이 지역 출신으로 친일행위를 한 인사들의 명단도 포함됐다.

이 지역출신으로 친일행위를 한 인사들로는 이종린, 인태식이 해당된다.

이종린은 정미면 승산리 출신으로 1939년 일제에 적극 협력한이들을 내세워 내선일체의 철저 및 황국신민화, 소위 고도국방 국가체제를 확립시키려 했던 국민정신총동원 천도교연맹의 이사장 겸 흥아보국단 경기도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41년에는 국민총력연맹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당시 그는 “5천명 장정 보내는데 무슨 불안이 있느냐”는 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941년 8월에는 김동환, 최린, 한상룡, 장덕수, 이광수, 박흥식, 주요한 등 400여명의 친일파들과 부민관에서 임전대책협의회라는 친일단체를 만들고 ‘우리는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을 맹서하여 전력을 다하여 협력할 것을 결의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종린은 1920년대만 해도 대한민보의 주필로서 일제로부터 언론수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1922년에 전조선기자연맹, 1923년 5월에는 조선기자협회가 태동하는데 힘을 보탰으나 1930년대부터 친일로 돌아서기 시작해 일제말기에는 친일행위에 본격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로 인해 친일인사로 분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인태식은 석문출신으로 일제시대 홍천세무서장과 청주세무서장을 지냈다. 그는 당진군에서 땅 소유면적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이 지역 대표적 부호출신이다. 당시 당진군의 상당수 부호들은 비행기 헌납운동에 앞장서는 등 친일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친일파가 그렇듯 이종린과 인태식도 해방 후 친일행위로 인해 단죄되기는 커녕 이승만 정권에 적극 협력하면서 권세와 부를 누렸다.

이종린은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50년 5월에는 2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기도 했다.

인태식은 해방 후 국회의원과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익히 알려진 두 명의 인사 외에도 일제시대 당진군수를 역임했던 관료 중 친일행적이 드러난 인사들의 명단도 발표됐다.

일제시기 당진군수를 역임했던 15명의 인사들 중에서 2대 신우선, 4대 원은상, 5대 김진선, 6대 송양호, 7대 강대철, 8대 이승구, 9대 이만용, 10대 김원선, 11대 정낙훈, 12대 정홍섭, 15대 정인택 등이 친일파로 분류됐다.

반면 1대 이상만, 3대 김종선, 13대 김영동, 14대 정강모 등은 구체적인 친일행적이 드러나지 않아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담당자는 “관료의 경우 1912년 이후의 재직 여부를 적용 기준으로 삼았으며 구체적인 친일행적이 확인된 인물들에 한해 명단에 포함시켰다”며 “구체적인 친일행적이나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유 등은 아직 공개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사실확인이 좀더 필요하거나 사전 수록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 등은 2차 심의에서 최종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친일인명 사전편찬을 위한 모금운동에 참여한 바 있는 안승환 한터우리문화연구소장은 “친일인사들도 공로가 있으므로 과오를 덮자는 일부 논리는 말도 안된다”며 “지역에서 친일행위를 저지른 인사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