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밥 때마다 건너 밭으로 가서 “아버지! 밥 잡수러 오이소!”라고 불렀던 거 말고삼십오년을 살면서 아버지를 불러 보았던 적이 고작 몇 번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불러 모든 것을 가능케 했고 더 자라서는 아버지가 벌어주신 돈을 엄마에게 받아서 그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포항으로 유학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친구를 통해 교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참으로 생소했습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에게 무얼 구했던 적이 없었고 필요할 때면 엄마만 불러 왔었으니까요. 차라리 “하나님 엄마!”라면 모를까? 아버지!
할아버지와 다투실 때면 조금만 참으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무섭고 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으면서 아버지는 달라지셨지요.
할아버지는 생전에 매사 당신을 못마땅히 여기셨지만 맏아들인 당신에게 걸었던 기대가 남김없이 무너짐이 두고 두고 서운하여 그리하신 줄 짐작만 해 봅니다.
좋은 것, 맛난 것만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챙기시는 아버지. 아버지 무릎에 앉아 본 기억이 나는 없지만 어린 외손녀 둘을 보듬고 뒹굴고 오토바이 태워 동네를 뱅글뱅글돌아 주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유일한 즐거움은 노래이시지요.
아버지는 틈틈이 나를 붙들어 앉히시고 달력 뒷면에 노래가사를 큰 글씨로 반듯반듯하게 옮겨 적게 하시는 거며 테이프를 틀어 놓고 잘 들리지 않는 가사를 함께 맞추어 보는 것인데 그 집요함이 대단하여 안 들리면 정확하게 들릴 때까지 몇 번이고 테이프를 뒤집곤 하셨지요. 그 좋아하시는 노래방기기를 냉큼 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저번 여름 고추 밭에서 얼떨결에 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좁아지고 낮아진 아버지의 어깨를 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저희 곁에 있어 주세요. 소리내어 부르면 대답해 주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맛난 거 좋은 거 아버지도 드셔야지요. 한평생 산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웠다가 번번이 작아지기만 하신 아버지.
아버지! 요즈음은 송이버섯이 한창이라 새벽 산을 넘고 계시겠지요.
이제는 보입니다. 엄마 뒤에 서 계신 아버지가.
2005년 9월 21일
아버지의 하나 딸 윤미 올림
※경북 포항에서 살다가 남편 직장을 따라 지난 3월 송악면 중흥리에 둥지를 틀었다. 일상의 소소한 감동들을 수필이나 시로 옮기길 좋아한다. 열두살, 열살 난 자매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