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앞에서 J를 만났다. 7년만의 해후였다. 우리의 세월을 실감케 한 건 열살 먹은 은솔이 그리고 그 뒤로 태어난 휘윤이였다.

아직 혼자라고 했다. 십여년 전 J의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그 대문 앞을 고집스레 지키고 섰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누구야?..

社內 사람 너두 알지 모르겠다... 쪽문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그 팽팽한 침묵속으로 조심스레 눈길을 옮겼다. 내 눈은 그 남자의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랜드로바에서 아직 다림줄이 가시지 않은 새 유니폼으로 올라갔고 왼쪽 가슴에 반듯하게 붙은 이름표 위에 가서야 딱 멎고 말았다.

정. 영. 복.

현장을 지날때면 샛노란 안전모가 소풍가는 아이처럼 보이던 그 남자 청작업복은 아직도 땀에 젖으면 하얀 속옷에 푸른물이 배일 것 같던 그 남자. 내 친구의 남자였던가?? 그 여름 지나고 시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무렵 “이윤미씨 어디 방 난데 없어요?”

“어머! 나도 지금 방 구하러 다니는데 같이 갈래요?” <달세방있슴>...

그가 들어가 보고 <전세방 있슴>... 내가 들어가 보고 그 남자의 달세방과 나의 전세방은 큰 네거리를 사이에 두고 구해졌고 자연스레 가까와지던 어느 날 J에게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그래?

잘 되었네...” 나는 니가 보았던 그날이 마지막이었지... 진즉에 말하지, 축하해 줄텐데...

BR>다른 이의 남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내 남자가 되었고 오래오래 나를 위해 수고해야 하고 초라해져야 할 때도 있으리라 한사람을 온전히 품는 것이 참으로 힘이듬을 알아간다 나로인해 그 남자의 인생이 활짝 개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그에게 주고픈 것들은 내게 흘러넘쳐서 그에게로 흘러가면 좋겠다 돌려받지 않아도 곤고해지지 아니하도록.. 시월 마지막 주부터 봄이였던 그해 92년 가을을 기억하며 ※경북 포항에서 살다가 남편 직장을 따라 지난 3월 송악면 중흥리에 둥지를 틀었다. 일상의 소소한 감동들을 수필이나 시로 옮기길 좋아한다.

열두살, 열살 난 자매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