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현 / 한우리독서문화원장

새로운 자아출현기 ‘사십대’

이른 저녁을 먹고, 이웃한 좋은 벗들과 함께 야호대에 다녀왔습니다. 솔바람 소리가 제법이더군요. 마음껏 귀도 열고 마음도 열어봅니다. 향긋한 솔내음이 아직 바래지 않은 우리들의 꿈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분주하기만 한 우리네 살림살이가 시심(詩心)따위는 잊게 합니다.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첫 연과 마지막 연 “왜 사냐건 웃지요”를 읊어가며 아득해지는 기억력을 걱정하며 세월 다 산 노인네처럼 저 만큼 가버린 젊음을 아쉬워했지요.

길 옆으로 호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실하게 열린 열매가 보기도 좋았습니다. 남의 것이지만 탐하는 그 심보가 밉지도 않았구요.

이런 하찮은 욕구도 있지만 ‘나’이고 싶은 철학적 욕구도 있겠지요. 여자이면서 ‘나’이기를 꿈꾼다면 불온한 것이 되버리는 이즈러진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칼 융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사람의 인성에 있어서 근본적 변동이 마흔살 경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행동과 의식에 탈바꿈이 발생하는 결정적인 전환기로서 무의식 수준에 묻혔던 자아가 새로이 출현 발달한다. 그 이전에 외부세계에 쏟았던 에너지를 내적 자아에 촛점을 맞춘다. 전반부에 무시되었던 본능적이고 적나라한 자아가 출현하면서 내 식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는 것이다. ’

착한 여자, 좋은 아내, 훌륭한 어머니이기를 강요받고 스스로 그 굴레를 기꺼워했던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간다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허망해지면 노래방에 가서 유행가 가사에 마음실어 달래는 게 고작인 비루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꿈꾸지 못하는 여성들의 안타까움에 대해 소식 전해봅니다.

제가 아는 페미니스트가 한사람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남편한테 기대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