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현 / 한우리독서문화원장
추억할 게 없는 아이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보내주시는 차를 염치없이 받기만 합니다. 받는 사람의 기쁨을 짐작하고 선물을 싸는 일이 얼만큼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에 넉살 좋게 받습니다. 친한 벗을 불러 햇차 한잔 나눴습니다. 아마 자랑을 하고 싶었겠지요.
늦은밤, 雨前茶(우전차)를 옆에 놓고 보니 귀한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해서 아직은 밤바람이 차지만 창을 열어봅니다. 외곽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시끄러움을 뚫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리를 쫓다 보면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유년의 추억에 가 닿습니다. 작은 일들도 대단한 추억으로 윤색해서 간직하려는 것은 어쩌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싶은 까닭이지요.
개인적 상념은 그렇다치고 요즈음 아이들은 자라서 무엇을 추억할까요. 얼마전 그림 그리시는 분들, 사진 하시는 분, 여러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1960년대의 이야기로 얘기꽃을 피운적이 있었지요. 모두 마흔을 넘긴 사람들이다 보니 공감대가 있어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옛 이야기를 할 때는 사람들 모두 신명이 오르더군요. 미술선생님이신 어느 분의 추억담이 생각나네요. 학교마당에 설치된 가설극장에서 가마니 바닥에 버려졌던 이야기가 인상에 남더라구요.
누나 무릎에서 영화를 보다 잠이 든 동생을 바닥에 눕히고 영화가 끝나자 동생일은 까맣게 잊고 혼자만 집에 돌아간 누이덕에 미아가 되버린 소년. 잠이 깨어보니 깜깜한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그날의 광경... 그가 그림을 할 수 있었던 원천이 그런 유년의 추억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도 먹고 싶었지만 소풍때나 겨우 먹을 수 있었던 아이스케키, 딱지치기, 사방치기, 고무줄놀이, 땀냄새, 싸움질. 이런 것들이 살아 숨쉬는 골목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요. 우리 아이들은 지금 짐짝처럼 학원차에 실려 사색의 공간을 차압당한채 가야하는 길이 어딘지도 모르는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걱정입니다.
늦은 밤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마련이지요. 칠칠찮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줄 알지만 친하고 싶기에... 잘 지내시구요.
※ 우전차-곡우전에 따는 차, 어린잎으로 고급차에 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