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의원 제1선거구에서 일찌감치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확정됐던 김홍장(44) 일선플랜트 회장은 이번이 4번째 도전이다. 김홍장 후보는 “당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재를 키워내는 인프라”라며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27살에 정치 입문
김홍장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때는 27살 때였다. 정치가 집안에서 자란 김홍장 후보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보고들은 덕분에 일찍부터 정치에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집안사람들이 민주화 운동 등으로 곤란을 겪는 모습을 계속 보아왔다는 것. 그래서 “정치가 안정되어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해왔고, 지난 1986년부터 평민당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김 후보의 정치입문이다. 그 후 국민회의, 민주당에서 지속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왔다.
“지역에서 언론을 통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1991년 ‘당진신문’을 창간했습니다. 기존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잘못된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김홍장 후보는 당진신문이 1995년 문을 닫기는 했지만 언론사를 운영하며 당진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진신문을 운영하면서 1994년 지방선거에 첫 도전했고 낙선했다. 그 후 1998년, 2002년에도 도의원에 도전했으나 번번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중도우파 지향 열린우리당 선택
김홍장 후보는 평민당에서 시작해 ‘한길’만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한 가지 소신을 가지고 한 정당에서만 계속 활동해왔다는 것.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해 “나는 강자보단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소외계층인 노약자, 장애우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셈이지만 노동자, 농민의 대표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보다는 더 폭넓게 ‘서민’층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은 처음 정치에 나설 때부터 가진 생각입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었을 때가 자신의 정치인생 중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김홍장 후보. 그는 “그토록 원했던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진 의미를 잘 알기에 주저없이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으로 꼽겠다”고 말했다. 물론 정권재창출 성공도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재육성, 당진의 중요한 현안”
김홍장 후보는 정치활동을 하면서도 당진을 이끌 젊은 인재들이 부족한 현실이 항상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당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당진을 등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김홍장 후보는 인재육성을 위한 교육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모토가 ‘당진의 교육인프라 구축’이다.
약력
- 고대면 슬항리 출생(1962년)
- 기독교 대한감리회 청장년선교회 충청연회연합회 회장
- 민주평화통일 정책자문위원
- 남이흥장군문화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 당진시 승격 추진위원회 홍보처장
- ’95년, ’98년, ’02년 도의원 출마
- 당진문화원 부원장 역임
- 한국지역신문협회 부회장 역임
- 당진신문 발행인 역임
- 고대중학교 운영위원장 역임
- 상록문화제 집행위원회 이사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