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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는 내 인생에서 전부나 다름없다.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줬고 약해지는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공주사대 부고 1학년 재학시 유도부의 정태수 선생님이 공주경찰서 도장에서 선보였던 ‘허리튀기’ 기술은 어린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 유도부에서 활동하다가 용인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나의 유도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 사진은 1960년대 초반 용인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젊고 패기에 찬 모습이다. 용인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유도실력이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지만 졸업할 때는 상위권에 들 정도로 기량이 향상됐다. 당시 엄격한 선후배 관계와 훈련으로 인해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도복만 입고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두 번째 사진은 1960년대 중반 동네 친구인 이보성의 결혼식 때 보성이의 처가인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찍은 것이다.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 보성이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 논산까지 달려갔다. 장난끼가 심했던 우리들은 결혼전날 새신랑 보성이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도 때리고 함도 팔며 재미있게 보냈다. 사진에서 가운데 한복을 입은 보성이는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한다. 오른쪽에 있는 친구 차동선은 독일에 광부로 나갔는데 지금은 소식이 없다.

세 번째 사진은 1970년대 말 호서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시 체육관 앞에서 찍은 것이다. 가운데 안경을 쓴 이가 나고 내 왼쪽으로 현 교장인 이완상 선생, 맨 왼쪽에 강광우 전 교장 등이 보인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젊은 시절의 모습이 엿보인다. 맨 오른쪽에 교련복을 입은 학생은 이규빈으로 유도부 주장을 맡아서 활동했었다.

우리들 뒤로 보이는 체육관은 유도를 포함한 각종 체육, 문화행사를 벌이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체육관 건립을 위해 철거되고 없다.

이 학교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