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미래는 컴퓨터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가 상용화되지 않던 시절부터 개인용 컴퓨터의 성장을 예측하고 전 세계에 컴퓨터를 확산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이제는 빌 게이츠라는 이름만으로도 막강한 퍼스널 브랜드의 파워를 발휘하게 되었다. ‘빌 게이츠’하면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컴퓨터는 곧 빌 게이츠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다.
빌 게이츠는 단순히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부를 얻은 사나이가 아니라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놓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천재성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소프트웨어란 누구나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풍토를 과감히 뒤엎고, 프로그램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 전환을 꾀한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했다.
겨우 2명이 운영하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제 2만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고 연간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사실 빌 게이츠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그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빌 게이츠 뒤에 스티븐 발머라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발머는 빌 게이츠의 든든한 오른팔 역할을 해오며 빌 게이츠와 더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이뤄낸 인물이다. 그는 빌 게이츠의 분신과도 같았으며 실제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관계를 ‘결혼’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만일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 기숙사에서 스티븐 발머를 만나지 못했다면, 또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서 폴 앨런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아는 인간경영에서도 능한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모든 경영권과 CEO의 직위를 스티븐 발머 사장에게 넘겨준 상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천재의 재능을 발휘했듯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경영 노하우를 가졌다. 그는 “5퍼센트의 뛰어난 인재가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하며, 소수의 창조적 개인을 제대로 활용해 잠재능력까지 극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표적인 인재 영입의 사례가 현재 빌 게이츠의 기술 자문역이자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아눕 굽타이다. 아눕 굽타는 처음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는 빌 게이츠의 전용기가 자신을 데리러오는 상황에서도 이직을 거절한 사람이었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아눕 굽타를 확보하기 위해 그가 소속된 회사를 통째로 사버리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삼고초려를 해서 확보한 인재는 과연 그 몇 배의 능력을 발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이 된 아눕 굽타는 ‘이스탄불’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신개념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자신을 선택한 회사에 은혜를 갚았다.
빌 게이츠는 꽤 오래 전부터 매년 두 번의 ‘생각주간’을 갖는다. 즉, 얼마의 기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미래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별장에 은둔하며 일체의 외부인은 물론 가족이나 MS의 모든 직원들의 방문을 금지하고 단지 하루 두 차례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생각주간’동안 그는 100개가 넘는 방대한 양의 문서를 읽으며, 중요한 업무는 이메일로 지시한다. 지난 1995년에는 이 기간 동안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개발해 이미 선점해 있던 넷스케이프를 물리치기도 했다.
천재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기술의 만남이 이루어짐으로써 세계는 한 단계 더 진보될 수 있었다. 빌 게이츠, 과연 그는 기술의 노하우와 창의력, 게다가 사업적 통찰력까지 가진 이 시대의 희귀한 인재라 할 수 있다. 당진군에서도 제 2의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