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11월 27일). 200m 크기의 벽화를 그리기로 자원봉사자와 약속한 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벽면 청소를 해야만 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칼바람이 살을 뚫고 뼈 속까지 추위가 엄습해 왔다.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나온다고 해도 벽면의 이끼와 먼지, 홈 패인 것을 메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욕심을 내보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벽화제작에 도움을 주시기로 한 전문가들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중이고 가부를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
대축제 임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 포기하죠?”라고 하자 모든 분들이 벽화 청소를 하자고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힘을 주신다. 아! 그래 소방서도 우리 봉사단이다. 소방서봉사단에게 부탁하여 살수차를 빌리자! 추진위 위원장이 소방서로 직접 뛰어갔다. 협조해 주신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우비를 차려입고 빗자루, 청소솔, 쇠수세미를 들고 옹벽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끼어있는 이끼의 힘은 살수차의 압력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의 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쇠수세미팀이 벽에 붙어 거대한 벽의 이끼를 밀었다. 살수차가 3번이나 다녀갔다. 건설업을 하시는 한 분이 소식을 듣고 필요한 철구조물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셨다. 살수차 3대와 고압분사기와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벽화 청소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종일 비 속에서 청소를 했다.
이틀째. 벽화 그리는 사거리의 교통이 아주 위험했다. 자체적으로 교통안전도 지도하고 벽화제작에 필요물품도 후원받고... 1인다역의 자원봉사자들...
오후에 그렇게 내리지 않기를 바랐던 비가 결국 내렸다. 벽이 말라야 코팅제도 바르고 바탕색도 칠할 수 있는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열풍기를 구해서 벽면에 돌리기로 했다.
“열풍기를 수배하라!” 지상명령이 떨어졌다. 자원봉사자별로 아는 사람들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모두 돌린다. 열풍기를 무료로 빌려주신다는 분을 구했다. 지역의 미술작가도 소식을 듣고 현장에 와서 힘을 주었다.
삼일째. 전문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벽에 붙어 도색을 시작한다. 전문가가 준비해온 연필이 3다스, 밑그림은 절반도 못 그렸는데 연필이 떨어졌다. 앞으로 5다스의 연필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도색에 들어가자 자원봉사자들에게 힘이 붙었다.
설악가든 앞 4거리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서 가던 차가 벽화에 넋이 나가서 가지 않자 뒤에 있던 차가 빵빵거렸다. 이런 풍경에 자원봉사자들이 웃고 기뻐하더니 그런 차가 흔해지자 나중에는 화난 운전자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부렸다.
지나가던 시민이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만두와 호빵을 사왔다. 아시는 분은 자기가 레스토랑을 하는데 내일 저녁은 자신이 쏜다고 연락이 왔다. 신난다!
나흘째. 밤사이 눈이 내렸다. 늦게까지 작업한 곳은 페인트가 마르지 않아 도색한 그림의 일부가 흘러내렸다. 휴...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붓을 든 자원봉사자들의 태도가 정말 진지하다. 시간이 없어서 하루만 나오겠다던 자원봉사자가 매일 출근하고 있다. 도색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수가 많아서 밑그림 그리는 전문가들의 작업속도를 앞지르려고 하자 힘에 부쳐 한다. 지역의 작가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참여를 부탁하자 한 분의 작가가 참여해줬다.
닷새째. 벽화완성을 위해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오늘도 드문드문 비가 내린다. 오늘은 나흘째 참석한 임원들과 봉사자들과 자원봉사 경력이 20년이 넘는 베테랑(?)팀이 왔다. 14개조로 재가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단에서도 왔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벽화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이미 날이 너무 어두워져 내일을 기약해야만 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그림이 모두 흘러내렸다.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었다. 멍하니 벽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눈물이 비와 섞여 떨어졌다. 흘러내린 벽면의 물감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하루의 작업을 마무리했다.
엿새째. 어제 흘러내린 벽화의 양이 너무 많아 작업량이 두 배로 늘었다. 비가 오자 벽화에 비닐을 치고 작업에 들어갔다. 비닐 안에서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 대단하다.
벽화 그림 중 자원봉사실천을 상징하는 ‘발’에 벽화제작에 참여해 주신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이름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마르지 않은 부분을 말리는 작업을 하고 또 하루를 마감했다.
이레째.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다급한 추진위 임원 목소리, “어제 우박과 눈비가 섞여서 내리더니 벽화가 흘려 내렸어요.”
긴급하게 서울로 연락해서 엠(M) 조형연구소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걱정하지 말라 한다. 오늘 눈발이 너무 아름답게 날린다. 눈과 함께 한 벽화는 더 아름다웠다. 자원봉사대축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한 벽화, 모든 이를 위한 작업,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만든 벽화였다. 벽화제작에 참여하신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늘의 이 추위는 추위가 아니었다. 즐거움을 자극하는 자극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