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시절 간직했던 꿈은 소중하다. 어떤 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슴 한 구석의 보물상자에 고이 간직한 채 평생 한번 꺼내보지도 못하고 지내기도 한다. 나는 비록 가슴 속에만 묻어뒀지만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모진 인생살이를 견뎌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꿈이 있다.
한 때, 모든 열정을 불살랐던 그 꿈을 가끔씩 회상해 본다.
첫 번째 사진은 서울의 동명여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67년에 찍은 것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던 여성국극단의 공연을 우연하게 한번 본 후 창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곧장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박초월 선생님에게서 판소리와 창극을 사사하고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연극반을 결성했다. 공연 한 달을 앞두고 피나는 연습 끝에 드디어 무대에 오른 우리들은 구성진 판소리와 실감나는 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인기폭발, 친구들의 사인공세에 시달리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기도 했다.
당시 춘향전을 무대에 올렸는데 나는 이몽룡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은 방자로부터 한양으로 떠나게 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춘향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지금 봐도 실감나는 연기다. 창극은 내 학창시절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접어야 했다.
두 번째 사진은 그 보다 더 어렸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니까 1961년 무렵에 찍은 것이다. 서울 봉래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왕릉인 서오릉에 소풍가서 친구들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나고, 맨 왼쪽이 국회의원의 딸이었던 최영애, 왼쪽 두 번째가 반장이었던 홍종옥, 내 옆은 이정희이다. 초등학교 때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 친구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 번째 사진은 학교를 모두 졸업하고 한국마사회에서 일하던 1977년 6월6일 직장 야유회에 가서 찍은 것이다. 앞 줄 맨 오른쪽이 나다. 한국마사회에는 24살 때 입사해서 1년 정도 다녔는데 당시 지금의 남편(강종구 현 기지초등학교 교장)을 만나 장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창 연애하느라 정신없을 무렵이었지만 부산 경포대로 데이트 가자는 약혼자의 청을 거절하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직장 야유회에 갔다. 경기도 일산의 한 딸기밭으로 놀러간 20대의 꽃다운 처자들은 한껏 멋을 부리고 사진을 찍었다. 정리/ 유종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