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 제도가 있기 전에는 이름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가 오늘날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었다. 학교간의 격차가 아주 큰 편이어서 중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 한두 명쯤만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입학하곤 했다. 그 학생들은 장차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면서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했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높은 학구열을 발휘하곤 했다.

아직도 50대 후반 이상의 연로한 인사들 중에는 자신이 나온 소위 명문고등학교를 출신대학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긍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은 물론 중학교도 쉽지 않은 경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형편이니 그 빼어난 위상이 자랑스러울 만한 일이기도 하였다. 당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조건은 두뇌뿐만이 아니라 집안의 경제적 능력도 한몫하지 않았던가. 저렴한 학비를 받는 실업고라도 다니면서 학구열을 불태울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중학교 무시험 정책과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소위 명문고들은 그 권위를 상실했고 교육의 보편성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교육기회가 놀라운 속도로 확대되었다. 당연한 귀결로서 수월성 교육 또는 별도의 영재교육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평준화 이전의 명문고 논리와 오늘날의 그것은 상당한 질적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이제 과거처럼 일류의 일반계 고등학교(소위 인문고)에서 열심히 진학준비를 하고 서울대 등 소위 일류고등학교에 보다 많은 졸업생들을 입학시키는 학교만을 명문고로 분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화된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만큼 전문화 수준이 높은 학교들을 현대사회의 명문고로 인식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과학고나 외국어고교들이 인기를 모으고 실제로 아주 우수한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현실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요리, 미용, 실용음악과 애니메이션 등 신세대의 관심분야를 깊이 있게 다루는 전문고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학교들이 비록 명문이라는 호칭을 듣기는 어렵지만 시쳇말로 ‘뜨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성공의 의미와 사회적 삶의 중심 가치가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의 학교교육이 새롭게 변신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명문고의 개념과 추진 전략도 전통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향해야 할 목표가 다양하다는 생각으로 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교육이념과 환경조성 그리고 교육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 다음의 필수적인 조건은 재정투자의 획기적인 확대이다. 경쟁적인 조건을 조성하고 적어도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한 학교에 매년 10억 정도의 돈을 투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명문고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당진군과 당진장학회에서 우리 지역의 명문고를 육성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내실있는 투자를 통해서 정말 명문고다운 명문고를 육성할 수 있도록 뜻있는 분들의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당진의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서울이나 천안의 고등학교를 선호하기보다 오히려 당진에 있는 고등학교를 자랑스럽게 선택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