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진씨(왼)에게 유영근씨(오)는 분신같은 존재다.
▲ 이영진씨(왼)에게 유영근씨(오)는 분신같은 존재다.

1급장애인과 택시기사의 15년 뜨거운 우정

어김없이 오후 3시가 되면 이영진(63) 씨의 외출이 시작된다. 이씨의 전화를 받은 택시기사 유영근(56)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골목길 앞에 택시를 세워 놓고 이씨의 집으로 향한다. 유씨가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이씨를 등에 업는다. 이씨의 외출에 유씨가 곁에서 함께 한 지도 벌써 15년째다.

1984년 어느날, 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섰다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후 왼쪽 다리와 팔을 쓸 수 없게 됐다. 사고후 얼마동안은 지팡이를 짚고 조금씩 걸을 수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건강은 악화됐고 결국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운산리 교동 이장을 맡아왔고, 예비군중대장을 지낼 만큼 활동적이었던 이씨에게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삶의 이유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아이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씨를 찾던 이웃들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씨는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과거를 생각하면 단 1분 1초도 못 산다고 했다. 과거의 이영진은 잊었다며 지금의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힘든 나날들이지만 15년 동안 한결같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유씨가 있어서 이씨는 행복하다.

“동생은 내게 한 몸이나 마찬가지야, 15년 가까이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으니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식구보다 더 가깝지. 동생이 택시를 하니까 자주 술잔을 기울일 시간이 없지만 가끔 마주 앉아 있을 땐 아프기 전 보다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5년 전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외출을 하고 싶다는 이씨의 전화를 받고 유씨가 눈길을 달려왔다. 이 씨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이씨를 업고 골목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얼어붙은 길에 유씨의 발이 미끄러져 두 사람은 눈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씨의 안경이 깨지고 다리가 부러졌다. 이씨는 유씨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의 3시 외출은 계속됐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이씨에게 외출은 혼자 있는 외로움을 달래고 힘든 시간을 잊기 위한 애씀이라는 것을 유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아니면 형님을 모시고 다닐 사람이 없어요. 운전대를 손에 놓지 않는 한 매일 모시러 올 거예요. 다른 이유 뭐 없어요. 형님 마음을 아니까...”  두 사람은 말한다. 15년 가까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 대한 ‘마음’ 때문이라고. 그저 서로에 대한 마음, 그 뿐이라고.

피를 나눈 형제 사이에도 등을 돌리고 사는 요즘, 두 사람이 마주 잡은 두 손이 참 따뜻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