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당진지역 국회의원선거 낙선 이후 30여년 간의 진보(정치)운동, 더 가까이는 당진에서의 진보정치 10년의 세월을 성찰하는 나름 소중한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이 부족하였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조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고 글이 될지 모를 이 지면을 통해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저의 고민을 몇 가지 적어 보고자 합니다.

지난해 월스트리트발(發)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은 가능하지 않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한국사회가 그 동안 맹목적으로 추종해왔던 미국식 시장지상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입니다. 미국 부시정권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 교수가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이제 세계 경제의 흐름은 전혀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이념에 대한 맹목은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좁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섰던 진보진영 역시 특정 이념에 대한 맹목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근 깊은 사색 속에서 탐독한 ‘거대한 전환’의 저자 폴라니의 견해는 저에게는 진보주의에 대한 이러한 편향을 균형적 추로의 이동을 견인하는 현실적 시계였습니다. 폴라니는 국가를 부정하지도 않았고(국가 개입), 시장경제 말소(자본주의 해체)를 주장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국가나 시장 중 그 어느 것도 단일하게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우리나라 노정, 국정 갈등을 보면 폴라니류의 이러한 견해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이 참 많겠다는 생각입니다. 1년여 동안의 성찰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 사회를 ‘인간다운 삶의 구현체’로 변화 시키려면 현실을 구성하고 동작하게 하고 있는 요소들을 다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국가나 시장 등의 기능적 요소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기계적 방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창조성과 유연성을 상위에 놓고 현실에 적합한 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향후 저의 새로운 정치 활동의 방향의 시계를 정하는데 상당하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의 정치활동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의 구현’으로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의 실현방식으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개방적 태도로 폭넓은 가치를 규합하기 위해 폭넓은 세력과 공동의 포지션 확보를 위해 노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직된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합리적 타산을 가지고, 존재하는 불평등 구조를 현실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촛불 정국 이후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있어 이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지역의 모든 민주적 시장주의자, 합리적 민족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즉, 모든 민주 세력의 정치적 단일대오(복지동맹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형성을 위해 새로운 정치적 포지션 확립을 구상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도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동선으로서의 보편적, 인간적 가치 구현을 위해 최대로 확장된 공간에서 함께할 사람들, 상호간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속에서의 공통분모로 포섭돼야 할 일정한 정치적 성향은 이러저러한 이해와 갈등의 비가역성을 인정해야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하나로 모아져야 할 시대적 요구라는 것이 최근 저의 성찰의 결론입니다.

9월이면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려 합니다. 제가 떠나더라도 인간적 풍요가 넘치는 당진 건설을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노력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당진 시민사회의 보기드문 건강성을 믿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꿈의 실현을 위해 떠나는 저에겐 그동안의 군민 여러분의 과분했던 사랑이 커다란 힘이 될 것 입니다. 여전히 당진지역과 사람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