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과 장마가 오기 전 6월27일부터 9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 잡고 있는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바닷가와 내륙의 살기 좋은 작은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비교하면서 두 문명이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조화를 이루며 변천했는지를 도시공학도의 객관적 입장에서 접근했다. 마드리드를 출발하여 세고비아, 오비에도, 산티아고, 리스본, 까보다로까, 세비아, 그라나다, 코르도바, 똘레도를 거쳐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긴 버스여정이었다.
오늘날 국민의 90%가 로마 카톨릭을 종교로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이슬람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아랍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3차에 걸친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를 약 500년 동안 통치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 철학, 문화, 학문 등 전 분야에 걸쳐 7~8세기 사라센 제국의 이슬람족 침입 전까지 기독교 문화가 충만해 있었다. 로마 시대가 끝난 후 800년간의 이슬람 지배 시대는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의 세 민족과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반도에는 수학, 천문학, 역학, 번역학, 등의 발전을 가져왔고 특히 이슬람이 남긴 건축술과 다양한 장식의 문양이 주는 아름다움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 되어왔다. 그라나다의 헤네랄리페 정원 속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슬람의 지배는 반대로 기독교인의 국토재회복운동을 일으켰는데, 722년 북부 아스투리아 지방 꼬바동가 전투에서 기독교가 첫 승리를 거두면서 시작되었다. 11세기 알퐁소 6세의 톨레도 탈환, 엘시드 장군의 발렌시아 탈환, 13세기 성페르난도왕의 코르도바 회복을 계속하며, 결국 1492년 이사벨라여왕과 페르난도왕에 의하여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 제국인 나자리 왕국을 항복 시키고 약 700년에 걸친 국토재회복운동을 완성했다.
16세기 이사벨라여왕-카를로스5세-펠리페2세에 이르는 100년간의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대스페인 제국이라고 할 만큼 중남미를 비롯 괌, 사이판, 필리핀, 포르투갈까지 장악하면서 명실상부한 유럽 최강국이 된다. 그러나 펠리페 2세때 최절정에 달했던 스페인 국력은 펠리페 3세때 내정을 등한히 하고, 무기력한 펠리페 4세를 지나면서 경제불황이 겹치고 해양권을 상실, 국력의 약화를 가져 왔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프랑크프르트에서 환승을 하고 16시간 만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웅장한 규모의 새로 지은 공항에서 스페인특유의 노랑색톤의 천정 구조물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사진셔터를 누르며 이국적 건축물에 잠시 경이로움을 느꼈다. 마드리드에서 1시간정도 버스로 달려 밤 늦게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1985년 유네스코는 세고비아의 구시가지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로마시대 유적을 보존하게 했다. 세고비아에는 도심 한 가운데에 로마시대 지어졌던 수도교가 장엄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 호텔은 바로 수도교가 보이는 곳이었다. 가방을 풀고 야간 행군에 나섰다. 아주 작은 도시의 밤거리는 어떨까? 토요일밤의 도시는 살아있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스페인의 밤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는 주인공은 젊은이들이었다. 세고비아 카테드랄 뒷골목의 카페와 맥주집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파가 한 주간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이들의 알 수 없는 대화가 바람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젊은이가 넘쳐나고 활기가 온 거리를 감싸는 살기 좋은 도시였다. 우리 당진도 머지않아 세계속에 도시로 우뚝 솟아 날것으로 믿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산티아고는 그리스도의 12사도의 한 사람인 야곱의 순교지로 알려져 있다. 9세기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에서 사도 야곱의 유체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별이 나타났다고 믿은 알폰소 2세는 이곳에 성당을 짓게 되는데 바로 산티아고 카테드랄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스페인 최고 걸작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서 요한 계시록의 내용을 근거로 200개 이상의 조각상으로 만들어진 정면 입구는 현란할 정도로 아름답다. 예루살렘, 로마에 이은 가톨릭 3대 성지의 하나로 알려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시는 스페인 갈리시아지방 중심도시의 하나로 옥수수 포도등의 농산물 집산지이며 은세공, 칠기공예, 양조기술, 섬유, 가구등의 수공업이 도시 발달의 견인하였다.
<다음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