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4번째 큰 도시다. 인구 70만의 이 도시는 과달기르강이 북에서 남으로 도시를 가로지르고 로마시대부터 지중해의 거점 도시로서 대륙 간 무역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돈 후앙의 출생지로 유명한 이곳은 투우와 플라멩고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1929년 중남미 엑스포를 개최하였고 콜럼부스 신대륙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에는 세계엑스포를 개최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세비야대성당은 1401에 건축이 시작되어 르네상스가 꽃 피웠던 1568년에 완공되었다. 성당 내부는 5개의 본당과 25개의 예배당을 갖췄고 15세기의 스테인글라스를 비롯하여 예술적인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어두운 실내로 들어오는 스테인글라스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에 심취되어 뒷목이 아프도록 쳐다보았다.
우리 일행은 긴 버스 여행과 무더운 날씨에 서서히 기력이 떨어질 무렵 석류를 뜻하는 도시 그라나다에 도착go 이슬람 왕국시대의 마지막 번영을 누렸던 알함부라 궁전을 보며 절로 나오는 탄성에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붉은 성이란 뜻의 알함브라 궁전은 성벽길이가 2km, 넓이가 220㎡의 규모다. 무데하르라는 독특한 아랍 건축 양식의으로 알카사바, 왕궁, 카를로스5세궁, 히네랄리페 정원의 4지역으로 계획되어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 땅에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술을 꽃피우고 떠났다. 이슬람이 떠난 땅에 기독교는 이를 잘 보존하고 기독교의 예배당으로 접목시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 문화의 갈등과 대결구도는 깊었지만 인류가 추구하는 평화와 공존의 목표는 동일하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고 인류는 평화를 원하지만 종교가 다른 이질적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베리아 반도의 긴 여정의 중간에 한 때 해양 제국으로 이름을 날렸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여행했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땅끝 마을 '까보 다 로까'(Cabo da Roca) 절벽에 서서 푸르게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훈풍을 맞았다. 기념탑과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방문 기념증명서를 발행하는 사무실을 구경했다. 이곳 사람들이야 별 의미가 없겠지만 멀리서 오는 관광객에게 증명서를 발행하고 돈을 받는 아이디어에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대서양 푸른 바닷가 도로를 버스가 달리는 동안 푸른 바다와 해변도시의 조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경관이 주는 도시 계획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수변 공간 주변의 주거지역과 상업시설의 조화는 도시의 자족 생활을 가능하게 하면서 휴양 개념의 쾌적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1243년 알폰소 3세가 리스본을 수도로 정한 뒤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 전성기가 꽃을 피우게 된다. 15세기 중반부터 해외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재물로 인해 대도시로 성장하는 리스본은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새로운 도시계획에 의해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오늘날의 리스본은 당시 지진에서 건재했던 구시가지와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황소와의 한바탕의 싸움을 축제로 바꾸는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과 이질적 종교를 다 수용하면서 인간에 대해 가장 관대한 심성으로 이민족을 대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이번 답사는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으로 큰 축복을 받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