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나라의 꽃

설사에 시달렸다.

아침밥을 굶었다.

아파트 정문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차들 몇몇에 길을 양보한다.

오랜만에 좀 들어가는 길로 들어선 골목길

어제 내린 비에 가슴 온통 얼룩 번진

시멘트 담장들 위에 처음 보는 얼굴들.

이 집은 보기 힘든 능금꽃,

이 집은 산에서 갓 이사온 산사나무꽃,

그 다음 다음 집은 신록 속의 백작약 봉오리,

그 다음은 노란 새 하나 들어 있던 새장,

오늘은 비었구나, 아 문이 열려 있다!

자연(自然)도 한번쯤은 침 꿀꺽 삼킬

저 시멘트 담장 위의 속옷 연 햇빛.

뒤차가 몇번 경적을 울린다.

나는 위험 신호등을 깜빡거린다.

“잠깐만 참으시압.

자연의 가슴에서

목하(目下) 수유중!”

황동규 시집 '미시령 큰바람' 중에서

- 시 소개해주는 남자: 정봉식(호서고 교사, 본지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