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기위해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던 학생이 마주오던 차량을 보지 못한 채 부딪혔다.

차량에 부딪힌 학생은 도로로 나동그라지면서 버스정류장 뒤편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김윤기 교사는 이 모든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뇌수술까지 받았던 사고, 학생은 다행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김 교사는 당시 상황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김 교사는아침 등교길에 아이들 교통지도에 나섰다. 아이들을 실은 버스가 도착하면 상대 도로 차량을 막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한다. 아침 7시40분이면 시작돼 8시 30분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눈이 오고 비가 내려도 늘 교통지도를 나선다.

“지금은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이 계셔서 제가 할 일은 거의 없어요. 추운 날에 눈이 쌓여도 밖에서 1시간 가량 서있었더니 나중에는 동상이 걸릴 것 같더라고요. 따뜻한 곳에 들어오면 발이 간질간질해서 남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어려울 때도 있었죠.”

김 교사 덕에 송악중, 고등학교 앞 도로에서는 3년간 무사고다. 이전에는 1년에 1, 2회 교통사고가 발생해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학교 앞이지만 중, 고등학생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 보호구역과 같이 속도 감속 구간이 아니고 방지턱 하나 설치돼 있지 않다. 신호등도 없고 학교 앞 도로는 거의 직선이어서 속도를 내는 차량이 많이 지나간다. 또한 송악산업단지와 한진으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하여 커다란 덤프트럭이 내기라도 하듯 쌩쌩 달려온다.

“속도위반 감시카메라라도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해 봤지만 학교에서 400m도 채 안되는 가학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카메라를 옮기면 마을회관 노인 분들 안전도 중요하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죠.”

1981년 송악중학교에 부임한 김윤기 교사는 어느덧 당시 가르쳤던 학생들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세월을 보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학생들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직접 사회 봉사에 앞장서기도 했다. 송악라이온스 클럽 회장직을 맡으며 지역봉사를 해오던 그는 기지시 차부 슈퍼를 운영하기도 해 송악읍 내에서는 김 교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주말이나 퇴근 시간 후에는 제가 직접 슈퍼에서 시내, 외버스 차표를 발매해주기도 하다보니 아이들 생활지도도 자연스레 하게 됐었죠.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을 알다보니 근처에서 폭행사건이나 담배를 태운다던가 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학생부장을 역임하며 때론 엄한 교사로 아이들을 위해 일하던 김 교사는 어느덧 정년 5년여의 시간을 남겨두었다. 남은 시간 그리고 퇴임이후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인자한 모습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