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5시30분경 바다로 향한 허문길(송악 한진리, 65) 씨 부부가 오전10시에 뭍으로 돌아왔다. 10년 넘게 함께 해온 영진호에는 오늘도 바다가 준 선물이 가득이다. 작은 배 갑판에는 소라와 참게, 낙지가 올라와 있다.

작은 우럭도 몇 마리 보인다. 처음 배에 올랐던 30년 전에 비하면 어종도, 수량도 눈에 띄게 줄었지만 땀 흘린 만큼 주어지는 건 변함이 없다. “많이가 뭐예요.

1/10은 줄었지요. 예전에는 삼치, 준치, 꽃게는 물론이고 고기 종류도 다양했지요. 70년대 말인가에 삽교방조제로 막히고 난 뒤 부터는 물고기가 줄었어요.

예전에는 고기가 풍부하니까 잡는 것보다 팔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조금만 잡아도 팔기가 쉬워졌죠.” 이북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남한으로 내려왔고, 스무살부터 송악읍 한진리 바닷가에 터전을 일구고 지금껏 살고 있다. 물고기가 풍성하던 시절 그는 생물장사를 했었다.

헌데 바다가 막히면서 어획량이 줄어드는 바람에 고기를 잡는 게 더 편하겠다 싶어 뱃사람이 됐단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바다에서 일하는 건 내가 흘린 땀만큼 얻는 거잖아요.

보통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고 상대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많죠. 내가 가지려면 남이 그만큼 못 가져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고요. 하지만 바다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노력하고 연구한 만큼 순수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게 바다예요.” 그는 “아내와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가 함께 일하니 얼마나 행복하냐”며 웃어 보였다. 삼남매를 슬하에 둔 허 씨는 바다에서 잡아 올린 고기를 팔아 아들, 딸 대학을 가르치고 둘은 결혼도 시켰다.

허씨는 아내와 함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를 빼고는 매일 이른 새벽 바다에 나가 일출을 목격하지만 그 광경은 매번 감동이다. “태양이 빨갛게 떠올라 오잖아요, 그럼 참 멋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태양의 모습말예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특히, 괴롭고 힘든 날에는 큰 힘이 됩니다. ‘어둠을 밝히는 태양처럼 언젠가는 환한 빛이 찾아오겠지’ 싶어서 위로가 되죠.” 그는 언젠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을 시로 적어볼까 생각 중이다.

바다는 그에게 먹고 사는 것 뿐만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위로도 해주는 존재다. 30년간 배에 오른 지금이야, 언제 어디에 가면 어떤 고기가 잘 잡히는 지 척척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배 타는 법을 누구에게 따로 배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몸으로 부딪혀 가며 어부가 되었다.

“배를 운전하는 것보다 철마다 어디에서 어떤 물고기가 나는 지 아는 게 더 어렵죠. 그래서 초창기에는 매일 일지를 썼어요. 그렇게 몇 년 동안 기록을 해 두면 헤매지 않고 어디에서 뭐가 나는 지 알 수 있죠.

뭐든지 조금씩 터득해 나가는 거 아니겠어요?” 대자연 바다 위에서 배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하는 뱃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위험이 공존하는 법이다. 허씨도 20여년 전에 잊지 못할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초창기였어요.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였던 것 같아요. 그물질이 서툴러서 그만 물에 빠져 버린 거예요.

바다에 빠지는 순간 ‘내가 이대로 죽으면 우리 애들은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도 내리사랑이라고 자식 걱정이 먼저 되더군요. 바다나갈 때 입는 옷을 입고 물에 빠지면 수영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도 힘이 생기더군요.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다는 내 저금통”이라는 허 씨는 “노력한 만큼 항상 인출이 가능한 바다에서 힘닿는 데까지 아내와 함께 뱃사람으로 사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다의 날을 맞아 “사람들이 바다의 소중함을 되새겼으면 좋겠다”며 “일반인들은 바다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개발도 좋지만 매립해서 공장을 세우는 건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물고기들이며 해양 생물들이 바닷가에 와서 산란을 해야 하는 데 그럴 수가 없으니 먹이사슬이 끊기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요.

한번 망가지면 돌이키기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