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의 의식 탐사·스위스 문화답사

나를 존중하고

똑같이 남을 존중한다

유럽의 개인주의·공동선을 위한 자발적 질서는 그들의 저력

현지 가이드나 여행사 가이드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떠나온 연수는 무거운 배낭에 강행군이기까지 했다. 영국에서도 올 여름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고 했다. 스위스로 가기 위해 땀을 줄줄 흘리며 공항으로 뛰었다.

그런데 이동스케쥴과 숙소예약을 대행한 국내 여행사측의 실수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비행기표는 분명 쮜리히 행인데 예약된 숙소는 제네바였던 것이다. 쮜리히와 제네바는 스위스의 동쪽현관과 서쪽현관에 해당하는 멀고도 먼 거리였다. 우째 이런 일이.

도착지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는 항공사측과 국내 여행사에 도무지 연결이 안되는 우리일행 사이에서 어느새 시간은 비행기 출발시각을 넘기고 있었다.

이런 급박한 경우에도 규칙을 지키는 데 엄격한 유럽인들. 비행기표도 있겠다, 숙소가 어디든 태워주면 그만일 것을. 매니저와 직원 몇사람이 더 개입해 들어왔고, 일단 쮜리히 도착을 결심한 우리는 뛰었다. 핸드폰을 들고 그들도 함께 뛰었다. 그들은 많이 웃지 않았지만 끝까지 친절하고 공손했다.

법석통에 짐을 따로 부칠 겨를이 없었던 우리는 각자 몸통만한 짐가방을 멘 채 비행기에 올랐다.

공동체와 집단주의

우리 때문에 한참 기다렸을 비행기 승객들은 뜻밖에도 화나거나 흥분한 표정이 아니었다. 누군가 무슨 딱한 사정이 생긴 게 틀림없지만 무슨 일인지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는 듯한 그들의 여유있는 표정이 낯설기만 했다.

외국인들이 잔뜩 앉아있는 좌석을 배낭을 든 채 비집고 들어가면서 ‘미안하다’고 하자 그들은 ‘괜찮다’는 말을 수없이 연발했다. 그리고는 나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꺼버리는 것이었다. 한사람은 열심히 책을, 한사람은 열심히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편안했고, 그들의 완전한 ‘방임’에서 묘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수첩을 꺼내 편한 마음으로 메모를 했다.

그들은 분명 각자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남에게 방해받고 싶지도, 이러쿵 저러쿵 남을 간섭하고 싶지도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에는 개인주의가 저변을 이루고 있나보다.

유럽의 개인주의가 곧 ‘소외’라고 보아온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우리의 ‘집단주의’는 개개인의 자유 위에 이루어진 공동체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신을 존중하고, 그만큼 타인을 존중한다. 각자 생각과 느낌이 다른 것을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눈치를 살필 것도 없다. 그들 문화의 다양성은 이 개인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서로 자유롭다.

그렇다면 그들의 개인주의는 공동체적 질서와 상반되지 않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들은 지독히도 질서와 규칙을 따지는 사람들이다. 처음 홍콩에서 영국으로 열네시간 비행을 하는 동안 나는 뒷좌석의 대여섯살박이 두 꼬마가 떠드는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다. 두아이는 공공장소인 기내에서 혹시나 애들이 떠들어 남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하는 엄마의 혹독한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도 애들 떠드는 소리에 신경 거슬리지 않아도 되었다.

또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런던에서 비좁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에도 그들은 반드시 오른쪽에 딱 한줄로 서서 올라갔다. 왼쪽으로는 급한 사람들이 걷거나 뛰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우리 역시 급할 때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들에게 질서는 ‘통제’가 아니라 모두의 편리를 위한 약속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댜양성이 보장되고, 그러면서도 공동체 유지를 위한 질서가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곳. 개인주의 대신 무질서를 상상하기 십상이였던 유럽은 은근히 우리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그것은 그들의 ‘엄청난 저력’임이 분명했다.

예쁜 주택은 자연환경의 산물

유럽의 역사는 구교, 즉 가톨릭의 역사다. 중요한 건축물 역시 가톨릭교회, 사원들이다. 일정이 엉키는 바람에 쮜리히에서 1박을 하게 된 우리는 그곳의 문화유적을 답사할 시간을 가졌다.

화가 샤갈이 제작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성모사원(프라우민스터)를 지나 대사원(그로스민스터)을 방문했다.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진 대사원은 작가 ‘빅토르위고’가 ‘후추가루통’이라고 부른 특이한 탑모양으로도 유명하다. 1,100년부터 1,200년까지 지어졌으며, 1519년 쯔빙글리로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탑에 오르는, 끝없는 가파른 외길계단은 감명이 깊었다. 천국 또는 평화, 혹은 중용이나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좥좁은 문좦을 연상시키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었다. 스위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석가시대의 유물을 볼 시간도 잠시 주어졌다.

저녁기차를 타고 제네바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위스는 듣던대로 아름다운 나라였다. 여유로운 언덕과 초원, 나무, 그림에서만 보던 세모지붕과 작은 창, 창가마다 예쁜 꽃들. 어딜 봐도 생존의 고통이나 바쁜 흔적은 없었다.

그나마 좥주택구조의 사회성좦을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스위스는 하마터면 한폭의 그림으로만 남을 뻔했다. 그들의 가파른 세모지붕은 잦은 폭설에 대비해 눈의 무게를 덜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큰 창 대신 작고 여러개인 창, 창마다 달려있는 덧문도 산악지대의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유럽풍 주택이라고 우리나라에서도 더러 짓곤하는 이 독특한 가옥형태는 이곳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일 뿐이다.

갈등없는 사회, 왜 자살율이 높은가

전국토가 관광상품이며 곳곳에서 관광수입을 올리는 스위스는 정치적으로는 중립국이며 사회복지제도의 선진국으로 인간의 낙원으로 보기에 그만인 곳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자살율이 높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란 무엇인가?

어쩌면 이 나라의 지나친 안락함이 삶의 동기를 무력화시키는 게 아닐까. 정치적인 분쟁도, 경제적인 불평등도, 아무런 갈등도 없는 상태는 삶의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삶에 보다 더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너무 생각을 비약한 것 같다.

스위스는 요즘 좥2차 대전 때 스위스은행에 거액을 맡겼던 수많은 유태인들이 대부분 희생됨에 따라 그 돈을 몰래 삼켜버렸다좦는 유태인 2세들의 국제적인 소송에 휘말려있다. 또 중립국 선언 이후 각국에서 물러난 부패권력자들의 재산은닉·은신처가 되어줌으로써 세계의 정의실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악평도 함께 받고 있다.

100년 후를 상상한 도시

UN본부가 있는 제네바는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이다. 이런 도시가 국제정치의 ‘핵심’에 놓여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

이곳에 오니 막연하긴 하지만, 천차만별인 각 나라의 상황을 ‘인권 가이드라인’ 같은 것으로 경고 또는 지원도 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무척 의미있어 보인다. 최근 NGO도 UN 참관자격이 주어져 사회운동의 세계교류가 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UN은 현재 미국이 몇년째 회비를 내지 않는 등 참여를 기피해 재정난에 처해있다고 한다. 세계인권선언도 미국이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전인류, 어느 국경, 어느 체제안에서 태어났건 소중한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나가는 일은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스위스에서는 모든 것이 유료다. 공짜는 없다. 오고 싶으면 돈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UN본부도 그랬고, 맞은편 적십자회관도 그랬다. 쮜리히에서는 중앙역 지하 화장실이 유료여서 당황했었다. 그러나 그 시설은 호텔로비 만큼이나 좋았다.

다시 행로를 돌려 루체른이다. 이곳은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알프스산이 여기에 있다. 다음날 로이스강변 식당에 앉아 독특한 지붕을 얹은 좥카펠다리좦와 하얀색 시립극장을 바라보았다.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길게 꽃무리를 이루고 있다. 가끔씩 비가 뿌려도 이들은 호들갑스럽게 피하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이곳에서 받은 느낌은 ‘준비된’ 도시, 대를 물린 도시라는 것이다. 60년, 혹은 1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가로수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하다. 가로수의 뿌리들은 이파리가 퍼져나간 반경 만큼 흙으로 잘 덮여 있었다. 문득 ‘우리는 우리 아이들,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도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