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더니 봄이 오는 걸음도 더디기만 하다. 3월에 접어들면서 마음은 벌써 꽃구경나갈 채비를 마쳤는데 날씨는 아직도 겨울인가 싶다. 주말에는 따뜻하고 주중에는 추운 날씨가 몇 주 째 반복되는 가운데 어느덧 춘분이 코앞이다. 춘분을 기점으로 다시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 덩달아 농민들의 일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꽃샘추위로 봄바람이 아직은 매서운데도 춘분을 일주일 앞둔 농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 15일과 16일 당진 곳곳에서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강한 바람 때문에 풍랑주의보가 내려 바다에 나가지 못한 어부는 부둣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논에서는 물을 대기 전에 로타리를 치고 물꼬를 확인하는 모습이 더러 눈에 띈다. 초봄에 가장 바쁜 곳은 밭이다. 지난 가을 심은 마늘밭에는 벌써 푸른 싹이 자라고 있다. 밭일을 하는 이들 10명 중 5명은 느즈막히 씨감자를 심는 이들이다.
장고항에서는 쭈꾸미, 실치잡이 시작
장고항을 찾은 15일에는 해안가가 하얗게 보일 만큼 파도가 제법 거칠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어민들도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바다에 나가지 못한 어부들은 배를 돌보거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유명렬 씨는 80미터는 족히 되는 그물을 널어놓고 해진 곳을 바늘로 꿰매고 있었다. 뾰족한 대바늘에 실을 꿰어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바늘에 찔리기도 하느냐고 물으니 헛웃음을 지어 보인다.
“찔리긴 왜 찔려요. 그물 꿰맨 지가 벌써 몇 년인데... 젊었을 적부터 바다에 나갔으니 벌써 수십 년은 됐겠구먼...”
유명렬 씨가 꿰매는 그물은 ‘뜬그물’로 쭈꾸미 잡이용이란다.
장고항에서는 요즘 쭈꾸미 잡이가 시작됐다. 아직은 날씨가 추워서 수확량이 많지 않고 3월 마지막주쯤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쭈꾸미가 올라온다. 4월이면 장고항 일대에서 열리는 실치축제는 올해 20, 30일로 예정되어 있다. 아직은 실치가 어려 먹을 수 없고 4월 중순쯤이 되어야 고소한 맛이 별미인 실치의 참맛을 맛 볼 수 있다.
봄 감자 심고, 마늘밭 풀매고
논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이맘때에는 밭일이 가장 바쁘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밭이 봄볕에 녹아 보드라워지면 농민들은 밭을 갈아 씨앗을 심는다. 옛날에는 소에 쟁기를 이어 밭을 갈았지만 요새는 열이면 열 모두 농기계로 밭을 간다.
순성면 갈산천 부근에 매실나무 묘목밭에서 김영일 씨가 로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밭 주인이 천안사람이라 이웃에 사는 김 씨에게 로터리 작업을 부탁했다고. 김 씨는 매실나무 묘목 사이에 난 잡풀들을 갈아엎기 위해 로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광천리 마늘 밭에서는 안무헌씨 부부가 풀을 매고 있다. 아직 다른 밭에는 겨우 종자를 심어 누런 황토흙만 드러나 있는데 반해 마늘밭에는 벌써 어른손으로 한뼘은 족히 넘을 만큼 싹이 자라 있다. 지난 가을 심은 종자가 겨우내 모진 추위를 견뎌내고 푸른 잎을 틔운 모습이 농민들 눈에는 기특하기만 하다. 안 씨는 6월10일경은 되어야 마늘을 수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봉소3리 산 아래 작은 텃밭에는 꼬부랑 할머니 안희식(80) 씨가 감자를 심은 뒤 고랑마다 비닐을 덮고 있었다.
“혼자 사는데 심심해서 소일거리 삼아서 밭을 일궜지. 묵은 땅인데 내가 조금씩 움직여서 검불 걷어내고 고랑을 일군 거여.”
할머니는 두고랑에 감자를 심고 좀 더 날이 따뜻해지면 남은 세고랑에 김치거리를 심을 생각이라고 했다. 감자가 알알이 여물면 외지에 나가 사는 5남매에게 조금씩 나눠줄 거란다.
논농사 준비 위한 움직임도
우강들판에는 지난 가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갈아엎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곳곳에서는 직접 논에 들어가 허물어진 논둑을 손보고 꺼진 곳을 돋는 이들도 보였다. 4월10일경이면 논에 물을 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전에 논을 미리 갈아 놓아야 한다. 볏짚은 가을에 수확을 마친 뒤 바로 갈아엎어 땅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쳐 논을 갈지 못한 농민들은 요즘 트랙터로 논일을 하고 있다. 이른 벼를 심는 이들 중에는 벌써 논에 물을 대어 놓은 곳도 있었다. 우강면 성원리에서 한 농민이 논바닥을 고르게 돋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묻자 모를 심기 전 이앙기가 빠지지 않도록 고르게 논바닥을 손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논 초입이 푹 꺼져서 모를 심을 때 애를 먹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미리 모 심기 전에 이앙기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고르게 돋우는 거예요. 이제 4월10일부터는 상자에 볍씨를 재어놓고 논에 물을 내려야죠. 우강 쌀이 해나루쌀 중에서도 진짜 해나루쌀이에요. 예전부터 우강쌀은 맛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올해는 풍년이 들어야 할 텐데 말예요.”
작년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농민들이 고통에 시달렸다. 이른 봄에는 하루가 멀다가하고 내리는 비 때문에 일조량이 부족해 속을 태워야 했다. 이어 태풍 곤파스가 강타해 사과나무가 부러져 나가고 벼가 쓰러져 수확을 앞둔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구제역 재앙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농민들은 잇단 악재로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시린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자 농민들이 논으로 밭으로 다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본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던데, 자연에 순응하며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농민들의 노고를 올해는 하늘이 저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