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가슴으로 맞아 본적 있습니까?

대기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며 땅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우리가 흔히 비라고 하며 또한 얼굴에 있는 눈이 녹아서 된 물을 눈물이라고 정의한다. 눈을 보호하고 청결을 유지하기위해, 자극이나 감동을 받으면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 비와 눈물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어지간히 비슷한 점이 많다. 요즘 눈물을 흘리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다문화가족이 많아서 걱정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려운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다문화가족이 느끼는 어려움은 우리네 일상 보다 훨씬 강한 독감과도 같은 현실에 직면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연들은 구구절절 가슴을 적신다. 혹여나 본국으로 전화라도 하려면 전화요금 때문에 가슴 졸이고, 친정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숨짓거나 눈물을 보이면 잘사는 한국에 와서 복에 겨워서 그런다고 면박을 주게 되는데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을 연상하게 된다. 어느 순간 얼굴에 웃음도 눈물도 메마르기 십상이며 참다 참다 가출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로부터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며 우는 것은 않되는데... 바보 같은데...라고 표현하며 살아왔다. 우리사회는 힘들어도 내색 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남편은 남편대로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옷을 사줬고 해달라는 것 다해줬으니 행복한줄 알라며 생각까지도 지배하고 보상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이 지긋하고 점잖은 군수님의 공식석상에서의 눈물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고생한 부인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우리네 가슴에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감정은 참는 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소통하고 함께 풀어가는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 이순간이 아닌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방사능 비 때문에 비마져 맞을 수 없다고 하니 가슴에 한이 옹이 되어 해소할 방법이 점점 줄어들까 염려되기도 한다. 우산이 없어서 손바닥으로 비를 맞으며 총총 걸어가다 문득 우산 없는 자유를 만끽해 본적이 있는가?

거센 소나기 후에 맑음이 있고 격정의 눈물 뒤에 카타르시스(정화)가 있다. 얼굴로는 웃지만 마음으로는 우는 것은 잔뜩 찌 뿌린 흐린 날씨와 흡사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중의 오해인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라는 표현은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한결같이 살자는 뜻인데 결혼이주여성들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고 대화를 통해서 풀어 가는 것, 즉 일방적으로 돈이 없으니 용돈은 줄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삶을 같이 공유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면 외롭다며 훌쩍 자기 친정인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곳곳에서 다문화축제를 하지만 일회성 행사로는 해결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스스로 아이를 낳아 키우며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을 엮어가는 것, 옷을 고르는 것처럼 생각을 고르는 것을 배우는 배움터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충분이 울 자격이 있고 표현하고 말할 이유가 있다. 교본대로 사는 인정 메마른 삶이 아닌 세상을 포용하고 얼굴로도 웃지만 마음으로도 웃는 건강한 가족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