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남 목사는 대전·충남 민주화운동의 원로이자 산증인이다. 군사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민주화운동가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통일과 인권 운동가들의 큰 어른이고 대한예수교장로회와 당진 지역 원로로서의 삶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40여 년 전 충북 옥천에서 첫 목회를 시작해 오는 11일 은퇴를 앞둔 이명남 목사는 “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참 빨리 갔다고 느껴진다”며 “돌아보면 보람있는 삶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는 “인권운동, 통일운동에는 정년이 없지 않냐”며 “우리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가톨릭농민회운동으로 사회운동 시작

대전 출신인 이명남 목사는 39년 전 충북 옥천 동이교회에서 목회자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진천 문백교회와 전북 임실 성수교회 등을 거쳐 지금의 당진교회에서 31년 간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이 목사가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된 건 1978년경이었다.

“1978년경 농민들이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떠나기 시작했어요. 전북 임실 시골에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 농민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가톨릭농민회운동을 통해 일찌감치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이후 이 목사는 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충남민주화운동본부 상임의장을 맡으며 민중들과 함께 독재정권에 맞섰다. ‘호언철폐 독재타도’를 울부짖었던 1987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을 맡아 30여 명의 목사들과 삭발 단식 농성도 벌였다. 목사 신분으로 삭발을 단행한 거의 최초의 민주화 사건이었다.

“통일 소리만 하면 붙잡아가던 시절이었어요. 운동가와 시민, 학생들이 모일 곳이 없으니 교회에 모였죠. 기독교가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의 횃불이었어요.”

이 목사는 당진에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도 서울과 대전 등 민주화운동의 역사 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당시만해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 당진에서 서울에 가려면 합덕에서 신례원을 거쳐 2~3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야 했다.

“지방이라고 민주화운동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운동이 일어났죠. 그때마다 학생들이 제일 많이 참여했고 또 제일 많이 경찰에 연행 되었어요. 그런데 목사인 내가 경찰서에 가면 연행된 학생들을 빼내 주었지요. 그러니 내가 앞에 안설 수가 있나요. 도저히 안 갈 수가 없는 거죠. 그런 시대였어요.”

당진에 새마을문고 설립

지역운동도 활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목사의 사회운동은 지역사회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진교회로 부임해 온 이명남 목사는 1980년 서민들을 위한 새마을금고를 열었다. 달러 빚, 고리대금에 시달리며 변변한 은행 거래 조차 쉽지 않았던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당진새마을금고를 처음 연 것이다. 민주화운동가라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좌익’이라는 곱지 않은 이미지가 아닌 지역의 원로로 인식된 것은 어쩌면 지역, 서민 등 바닥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800억 이상의 자산규모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한명의 직원을 두고 내가 첫 이사장을 맡았어요. 가난한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지요.” 서민들을 위해 새마을문고를 설립한 것은 지난해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자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밖에도 이 목사는 중부권특정폐기물 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아 지역주민들과 거리에 나섰으며 SK와 한보의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에도 선봉에 섰다. 당진시설치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현재도 지역사회 활동에 현역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섬김과 나눔”

이명남 목사는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의 개혁과제로 “경제성장과 더불어 물량주의로 가다보니 교회까지 세속화 되면서 명예욕과 지나친 보수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은 섬김과 나눔인 만큼 섬김의 자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서독이 동독을 돕지 않았으면 통일은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같은 민족이 어려울 때는 사랑으로 가야한다”며 동족애를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후배들에게 “여전히 통일이라는 큰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며 “민주화가 끝난 것처럼 안일한 자세는 안된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명남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해 뇌물 수수와 해외 도주 혐의 등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종기 전 군수를 위해 증인으로 법정에 선 것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 놓았다. 이 목사는 “군수 시절에는 가깝게 지내려고 했던 모든 이들이 등을 돌리며 욕을 하고 버리더라”며 “목회자로서 양이 수렁에 빠졌는데 나쁜 양이라고 해서 손을 놓아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목회자로서 ‘신의, 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은퇴 후에도 당진에 머물며 기독교와 시민사회, 지역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식은 11월11일 오전 11시 당진교회에서 진행된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상임의장

재일동포인권선교위원회 위원장

외국인노동자 공동의장

사형폐지위원회 공동의장

충남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