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읍 운곡리 봉고재(봉호산: 합덕읍 운산리 741-7)정상을 거의 오르면 정수장 철 대문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을 보면 쉽게 지나칠 만한 오솔길이 보이는데 안내 표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오솔길로 15m 정도 가다 보니 '삼 형제 바위'가 있었다. 높이는 1m가 제일 높고 가로는 전체가 2m로 삼 형제 바위가 있는 둘레는 마치 인위적으로 해 놓은 듯 봉분 비슷하게 낮게 꾸며져 있고 그 주위가 동그랗게 탑 돌이를 한 것처럼 사람들의 발자국 흔적이 눈에 뜨인다. 그 아래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운곡리 경로당을 찾아 전설을 여쭙고, 경로당에서 만나보라던 이재복(81세) 씨와 남완희(73세)씨를 만났다. 두 분은 산에서 제사를 정성껏 드렸던 옛이야기를 했다.

“옛날에는 눈이 내리면 호랑이 발자국이 보였던 곳 봉호산! 그곳에서 윤달 되는 해 정월 금줄을 띠고 타인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김과 간장으로 밥을 직접 해 먹으며 당시 바위 밑에서 나왔던 물로 몸을 씻어 정결하게 하고 제사를 지낸 그곳은 신성해서 여러 마을에서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어 쌀과 술을 바쳤고 그 정성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고 남씨는 말했다.

이야기는 조선 선조시대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씨라는 힘이 장사인 부지런한 농부가 살았는데 아내와 슬하에 삼 형제를 두고 다섯 식구가 별걱정 없이 오붓하게 살았다 .

평범하게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던 그는 오랑캐가 쳐들어왔다는 국난 소식을 듣게 된다. 가족을 모아놓고 국난을 이기는 방법을 가족에게 설명했다. 나라를 아껴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 것과 부모를 잘 섬길 것을 가르쳤다.

합덕 뜰까지 침입한 오랑캐는 닥치는 대로 물품을 강탈하고 부녀자들까지 겁탈했다.

이에 격분한 그는 오랑캐를 닥치는 대로 죽였다, 또다시 오랑캐를 죽이러 나갔다가 무참한 죽음을 맞았고, 그를 죽인 오랑캐들은 그의 집에 들어가 아내를 끌고 가버려 삼 형제는 고아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삼 형제는 집안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돌아오게 해 달라고 봉고재 에 올라 산신령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똑같이 찾아와 기도를 드렸다.

눈보라가치고 몹시 추운 날 이었지만 삼 형제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정성껏 기도만 했다 .

그러나 삼 형제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꽁꽁 얼어 죽고 만다. 그들이 죽자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봉고재가 무너지는 듯한 천둥이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눈보라 속에서 바위가 솟아났다. 마치 그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앉아있던 그대로의 바위 모양이었다.

어지럽던 시절이 끝나고 어머니가 돌아와 미친 듯이 아들들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아들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드리다 죽었다는 것을 알고 아들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여승이 되었다.

여승이 된 후에도 봉고재 에 들러 바위를 쓰다듬으며 아들이 보고 싶어 울었다.

그래서 여승이 산에 오르면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통곡소리가 가끔 들려 왔다고 한다.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기도하던 그 자리에 우뚝 솟아난 바위를 ‘삼 형제 바위’라고 지금도 어른들의 구전으로 전해진다.

김석준 시민기자 k3629009 @ 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