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얼마전 30년 동안 재직했던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사장 한상헌)에서 정년 퇴임했다. 건국대학교 농공학과를 마치고 ROTC 9기로 임관해 중위로 제대한 후 33살이 되던 해 입사했으니 그의 인생과 함께 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을 함께 하는 동안 대학의 농업전문 관련 학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농촌진흥청에서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가 참석하는 학회나 세미나가 참석하지 않는 경우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농기계공업협동조합에 입사해서는 기획팀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아 첫 발을 내딛었다. 그가 기틀을 닦아놓은 대규모 사업은 지금까지 이어져와 2년에 한번에 열리며 30여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한민국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로 성장했다.

그가 전공한 분야는 농업 분야 속에서도 생소한 ‘농공학’, 즉 농기계였다. 그가 대학에 입학때만 해도 농기계 분야는 지극히 낙후되어 있었다. 농업이 주요산업이었던 시대. 인력은 많고 농기계의 가격은 비쌌다. 농기계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기에 농기계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농기계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노령인구로 효율적인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과학화된 농기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면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천안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는 그에게 농기계 관련 학과로 진학할 것을 권했다. 건국대학교 농공과에는 토목분야와 농기계분야 2개가 있었고 그는 농기계를 선택했다. 그것은 결국 그의 인생 방향을 정해주었다.

“농기계 전시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죠”

“농기계전시회라는 것은 당시 아무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업이었죠. 농기계를 제작하는 업체들의 연합성격이 강했던 농기계공업협동조합이 있었지만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당시 조합의 이사장님과 임원들은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아는 분들이었습니다. 조합이 스스로 자립하고 수익을 창출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셨어요. 저도 그때 입사하게 됐습니다. 일단 입사하고 나서는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서 상하의 협조가 잘 이뤄지니 대규모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농기계박람회를 준비할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했단다. 농기계 업체들의 규모는 영세했고 농기계 하나를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수준의 업체가 허다했다. 담당팀장과 함께 업체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첫 개최시에 정부의 협조를 얻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며 “지금 성대하게 개최되는 국제농기계자재전시회를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농업의 미래에 대한 소신도 나름대로 피력했다. 농기계 분야에 대한 이론과 현장에서의 괴리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정부의 잘못된 농기계 정책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면서 뚜렷한 대안이 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퇴임 후 고향 찾는 시간 늘어

지난해 정년퇴임한 후 그는 이제 농기계박사에서 ‘당진인 이충호’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고향이지만 시간적 여력이 없던 탓에 1년에 서너차례 방문이 고작이었던 것에 반해 요새는 매주 방문하다시피 한단다.

그는 각종 강연과 세미나, 조합 사업추진에도 바쁜 와중에 벌여놓은 일이 더 있다. 화원을 운영하는 것과 매일 농기계 관련 정보를 모아 발행하는 웹진 ‘농기계정보’, 그리고 월간 ‘사랑과 행복이야기’가 그것이다. 3년 전에는 당진출신 출향인사들로 구성된 친목모임인 ‘당진포럼’의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농기계정보’는 매일 아침이면 그를 아는 사람들의 E메일로 배달된다. 농기계시세와 농기계 관련 정부정책 변화 등을 직접 수집해 보내준다.

화원 운영이나 웹진 발행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제일먼저 내미는 명함은 ‘사랑과 행복이야기’ 발행인이 인쇄된 명함이다. 그만큼 그가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여기는 일인 셈이다. 매월 발행되는 이 책자는 그가 사비를 들여 지인들 5000여명에게 보내준다. 이 책에는 지인들의 소식이 실린다. 화원을 운영하는 터라 남들보다 누구의 자녀가 결혼한다는 내용을 빨리 알수 있기에 이런 소식이 이 책자에 실리고 자신이 어느 결혼식에서 했던 주례사를 그대로 실린다. 친구들이 서는 주례사도 함께 실리기도 한다. 주례사가 아니더라도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좋은 글을 싣는다. 내용을 수집하고 제작 편집까지 그가 직접 할 뿐만 아니라 5000부를 발행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그의 개인 사비다. 그럼에도 매월 발행한 책이 어느덧 99권에 이르렀다. 100권이 되는 날 그동안 발행한 책을 모아 합본을 낼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퇴임 후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사랑과 행복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가장 의미를 두고 하고 있는 일이에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그가 매주 고향을 찾는 이유가 ‘이제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발전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편집자주] 지역에 교육기관이 부족한 탓에 학창 시절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해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출향인들이 밀집된 지역을 찾아가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과 각 분야에서 성공한 출향인들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기연 시민기자 alexsander1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