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관리요원 임광출 할아버지

마음은 항상 열 아홉 활기차게 살 것

1년에 수십억을 벌기도 했다. 건설회사 사장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8년, IMF 여파로 회사가 부도났다. 26살 조공생활부터 시작하며 제 손으로 일구어온 사업이 한 순간에 은행에 넘어갔다.

“당시 심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세월이 약이더군요.”

하나로마트 계성점에서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하는 임광출(68세, 송악읍 복운리) 할아버지는 한동안 일을 손에 잡을 수 없었다. 풍족하게 살던 과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경로당에 가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의 일상이 돼버렸다.

그는 “‘아직 젊고 아픈 곳도 없는데 왜 이러고 사나’ 생각했다”며 “뭐든 할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생각을 바꾸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동안 지루하게 보냈던 하루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배울 점도 많았다. 특히 그의 일터가 있는 원도심 지역은 차량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하는 번잡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는 주차를 안내하고 관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한편 노인 일자리 정책에 아쉬움도 크다.

“얼마든지 다른 일도 할 수 있어요. 그동안의 경력과 연륜으로 전문적인 분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노인을 위한 일자리를 찾다보니 경비같은 단순직 밖에 자리가 없더라고요.”

노인들이 일을 찾는 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봉급이 적어도 능력을 펼치며 살고 싶다”며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서도 퇴직한 노인들을 위해 전문분야 채용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업 부도 이후 쉽사리 일을 손에 잡지 못했던 데에는 이 같은 이유도 있다. 노인 일자리가 단순 업무 밖에 없다보니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도 들었다. 노인들의 능력이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자존심도 많이 상했죠. ‘사장까지 했는데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앞으로의 또 다른 삶을 개척해 나가려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임 할아버지는 “지금은 ‘자고 일어나면 내일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일에 재미를 붙였다”며 “그동안 침체되고 우울했던 마음도 일을 하면서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마음은 항상 19살 같아요. 남은 생을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면서 활기차게 살겁니다.”

아파트 환경미화원 이동래 할아버지

“남은 인생, 아름답게 살고 싶어”

“인생의 3라운드를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을비가 내려 제법 쌀쌀한 날에도 떨어진 낙엽들을 쓸어내고 있던 이동래(69세, 읍내동) 할아버지는 채운동 삼성쉐르빌 아파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여 년 간 서울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퇴직 후 지친 서울살이를 뒤로하고 당진에 왔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쯤 됐다.

“퇴직한 뒤 부동산 중개업을 3년 정도 했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의 정보력을 따라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 할아버지는 부동산 중개업을 그만두고 꽤 오랫동안 마땅히 할 일 없이 지냈다. 서울에서는 세대를 불문하고 워낙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정년퇴직한 사람들을 위한 일터를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7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순간, 무료함이 찾아오더니 점점 나태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익숙한 삶을 포기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는 “서울은 그저 복잡하고 따분할 뿐이었다”며 “아내가 시골에 사는 것을 원치 않아해 서울 가까운 지역이면서, 아파트에 살 수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텃밭을 가꿀 수도 있는 당진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도 봉사를 하거나 사회를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일들을 좋아했던 그는 당진에 내려오자마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연히 아파트의 환경을 관리하는 미화원 자리를 소개받아 시작하게 됐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 수도 있고,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주민들을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7시간 정도 일하고 틈틈이 텃밭도 일구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각오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게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 열심히 사는 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 할아버지는 남은 생을 더 멋있게 살고 싶어 했다. 값비싼 음식을 먹고, 명품 옷으로 치장한 ‘멋부리는 삶’이 아닌 “3라운드 인생인 노년기를 진정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가사도우미 인수복 할머니

육아, 살림 전문가인 손주 부자 할머니

인수복(67세, 읍내동) 할머니는 손주 부자다. 함께 살고 있는 고3 손자와 1년 넘게 가사도우미를 하며 돌보고 있는 아이들이 4명이다. 아이들 하나같이 친손주 마냥 사랑스럽다. 9살짜리 막내가 인 할머니 가슴팍에 안길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져 속상하지요. 엄마한테 쏟아야 하는 정일 텐데….”

할머니가 일하고 있는 가정의 네 아이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산다. 아버지 혼자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감당하기 힘들어 할머니를 소개받아 가사를 맡겼다. 그는 할머니의 성실함에 할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한단다.

인 할머니는 “큰 아들 나이와 같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홀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고 있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아침 6시 무렵 출근해, 아이들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잠을 깨우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한다. 다섯 식구에게 아침밥을 해 먹이고 출근과 등교를 시킨다. 청소를 하고 10시쯤 잠시 집에 돌아 와 할머니의 집안 살림도 하고 개인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4시 무렵에 다시 가서 간식도 준비해 주고, 저녁밥을 차리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하루 동안 학교에서 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풀어내면 할머니는 상담도 해주고, 칭찬도 해준다.

음주가무엔 관심이 없어 집에서 요리하고 집안 살림하던 게 취미가 돼버렸다는 인 할머니는 “아이들 돌보는 것도 적성에 딱 맞아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때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아이들이 할머니를 워낙 잘 따르고 정이 많이 들어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와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이들이 친손주와 진배없이 하나같이 예쁘다”며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잘 컸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돼 이 일을 그만뒀으면 하지만 인 할머니는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일을 하고 싶다.

“힘에 부치지도 않고 아이들과 집안일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요. 꾸준히 일을 해야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 지는 것 같고, 그래야 몸도 더 지치지 않지요. 게다가 아이들과 말벗 삼으면서 정도 쌓고,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까지 하니 일석이조, 삼조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