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지청자 씨, 손상령 할머니, 강길연 씨
(왼쪽부터)지청자 씨, 손상령 할머니, 강길연 씨

어느 당진포1리 주민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달려간 마을. 그날도 어김없이 강길연(73), 지청자(70) 씨는 동네 어르신 댁에 방문 중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이발도 해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기 시작한것이 어느덧 14년 째. 강길연 씨는 예순의 나이에 또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두 아들 잃은 슬픔 봉사하며 극복

“이전까지 정정하던 할머니(손상령, 85)가 어느 날 보니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여러 번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중풍으로 쓰러지셨다고 하데요. 당시에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고 계셨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일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강길연 씨)

강 씨가 홀로 봉사를 하다가 이 일을 함께하자고 지청자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아들을 2~3년 사이에 연이어 잃은 지 씨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방에서만 쥐죽은 듯 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강 씨의 손길은 또 다른 빛이 됐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마음에 기쁨과 보람을 채워나갔다”고 말하는 지청자 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극복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몸소 깨달았다.

대가 없는 봉사활동, 오해받기도

어린 자녀들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며 손에 익힌 이발 솜씨만 갖고 대가 없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종교를 전도하려는 목적으로만 생각하거나, 대상자의 재산을 탐낸다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어떤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들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봉사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가정에는 직접 물을 끓여다가 나르며 씻겨 드리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들의 활동이 한, 두해로 끝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도 두 사람의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마을 어르신 10여 명을 돌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몸이 편찮았던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셨다.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지요.”(지청자 씨)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할 것”

하지만 요즘처럼 눈이 내린 날, 혹은 거동이 힘든 날이면 강길연 씨와 지청자 씨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아 두 사람은 오늘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손상령 할머니는 “올 때가 됐는데 뜸하면 걱정부터 된다”며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항상 자신들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두 사람의 바람은 같다.

“날이 좀 풀리면 옆 동네 어르신들도 찾아뵈려고요. 차가 없으니 왕복 두 시간을 걸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우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도울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에요. 더 많이, 오래 봉사하고 싶은데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겠지요.” (강길연 씨)

어르신들 못지않게 나이가 들어버린 두 사람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단다. 이젠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이들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감사할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