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중심이었던 우물
물은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상수도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물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됐다.
송산면 서정리도 그랬다. 서쪽(西)에 큰 우물(井)이 있다하여 서정리라 불리는 이 마을에는 약200㎡(60평 정도) 정도로 추정되는 큰 우물이 있었다. 아낙들은 우물가에서 빨래 방망이질을 하며 고된 시집살이를 버텨냈고, 이 마르지 않는 샘에서 농부들은 물을 퍼다 농사를 지었다. 지금 우물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모두 같은 우물물을 먹으며 자랐다.
삽교호가 생긴 뒤부터 우물의 역할이 줄었다. 옛날처럼 우물가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나진 않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물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근에 산업단지와 현대식 주거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경지정리를 이유로 없어졌다.
“이 우물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도 지냈지. 마을 사람들 생활의 중심으로 큰 역할을 했는데 사라져서 아쉬운 건 두 말하면 잔소리여.”
죽은 아이를 묻던 서낭당 고개
지금 농협창고가 들어서 있는 자리엔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서낭당 고개라 불리는 이곳에 사람들은 이 앞을 오가며 돌을 하나 둘 쌓았고 큰 돌무덤을 이뤘다. 정월 대보름이나 칠석날엔 이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일찍 죽은 아이들이 이곳에 묻혔고, 늙은 부모를 버려두는 고려장을 하던 곳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터의 기운 탓인지 이곳에 아파트를 건립하다 부도가 나서 지금은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을 둘러싼 꿩배산의 전설
서정리는 봉화산의 줄기인 꿩배산(꿩밭재산)이 아늑하게 안고 있는 형국으로 사람들은 이를 ‘치성국’이라 부른다. 최근영 이장은 “터가 좋은지 우리 마을 출신의 박사들이 많다” 며 “서정리는 ‘박사마을’”이라고 말했다. 한편 꿩배산에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동네 사는 한 청년이 나무를 하러 이 산에 올랐다가 아이들이 꿩을 잡아 구워 먹는 것을 빼앗아 먹기 위해 꾀를 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 익은 꿩을 먹기 전에 자신이 괜찮은지 먼저 먹어 보겠다고 한 뒤, 꿩을 한 입 먹고 푸드득 거리며 데굴데굴 구르니 아이들이 무서워 도망갔다고 한다. 청년은 맛있는 꿩 구이를 혼자 다 먹고 나무를 한 짐 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이후 ‘꿩배산’이라 이름 붙었단다.
떠난 주민도 함께하는 ‘산통계’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서정리에는 지금 너무나 빠른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원룸단지가 생기고, 중명아파트가 들어섰다. 현대제철 등 인근 기업에 일하러 온 이주민들이 뜨내기처럼 오고 간다. 터를 잡고 살아가던 주민들도 읍내동이나 당진시내 쪽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과거에는 참 아늑하고 좋은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공사하느라 동네가 부산스러워 정신이 없어. 주민들이 많이 쫓겨났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돼.”(주민 김의곤 씨)
마을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한 달에 두 번, 매 1일과 15일마다 모여 산통계를 한다. 곗날엔 서정리에 살고 있는 주민, 마을을 떠난 주민 60여 명이 한데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식사도 한다. 산통계는 계원 숫자만큼 번호를 쓴 콩을 그릇에 넣고 작은 구멍 뚫린 비닐을 덧씌워, 그 구멍으로 나온 번호의 사람이 곗돈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계를 탄 사람은 그날 반찬값을 흔쾌히 내놓아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다.
전통방식의 ‘서정한과’
서정리는 또한 2년 전부터 마을 노인회의 수익사업으로 한과를 만들어 판매 중이다. 모든 과정에 어르신들이 손수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집에서 만드는 한과 맛을 재현하고 있다.
또한 현대제철과 자매결연을 맺고 이들의 후원으로 매주 금요일 마다 주민들을 위한 요가교실, 노래교실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마을 주민대표
“옛 모습 잃는 것 안타까워”
“동네가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게 가슴이 아파요. 고향도 고향이 아닌, 정 둘 곳 없는 주민들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죠.” (최성복 지도자)
개발로 인해 마을에 젊은 인구는 많아졌지만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기는 어렵다. 아파트나 원룸에 사는 이주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 마을일에는 주로 노인들이 중심이 된다.
김관태 노인회장은 “계모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근영 이장은 “서정리는 변화가 큰 만큼 당진의 어느 곳보다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마을”이라며 “전통마을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은 있지만 주민들의 애향심이 깊어 마을이 계속해서 발전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