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오는 옛 이야기가 넘쳐난다. 유서 깊은 고찰이 마을의 역사와 문화, 생활의 중심이다 보니, 절을 둘러싼 전설이 많다. 면천면 성하리 주민들에게 영탑사는 든든한 마음의 안식처이자 경외의 대상이다.

면천이 지역의 중심지로 읍성을 축조했을 당시 성(城)의 아랫마을이어서 성하리(城下里)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면사무소 소재지와 가깝고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다. 삽교천 방조제가 막히기 전까지 성하리는 물이 닿기 어려운 천수답인지라 흉년이 잦았다. 하지만 1965년 경 영탑사에서 주민들을 위해 땅 483평을 희사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후로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10여 년이 흐른 뒤 주민들은 이를 보답코자 영탑사에서 면천으로 이어지는 폭 4m의 길을 만들었다. 그동안 절까지 들어가는 길이 질고 다니기 어려워 불편함이 많았는데 주민들이 십시일반 땅을 내놓고, 손수 길을 포장했다는 것이다.

석탑과 돌미륵에 관한 전설

수덕사의 말사인 영탑사는 신라 말 창건됐다고 추정되며 당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고찰이다. 오랜 역사와 그를 둘러싼 전설들로 주민들은 영탑사를 영험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이곳에는 영탑사 이름의 유래가 된 오래된 석탑이 있는데 보통 절 마당에 있는 탑들과 달리 영탑사 석탑은 법당 뒤편 연화봉에 위치해 있다. 주민들은 이 탑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믿고 있다.

“원래 7층으로 만들어졌는데 두 층을 뺐었데. 그런데 대를 이을 자손이 없던 공의(의사) 고시중 선생이 용봉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정성으로 두 층을 다시 쌓아 올린 뒤 자손을 낳았다지. 현재 그 아들이 아직도 살아계시지. 석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개의 층이 다른 것과 모양이 좀 달라.” (정재복 노인회장)

이밖에도 탑 아래 ‘유리광전’이라 불리는 돌미륵(약사여래 마애불상)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려 장원급제했다는 얘기부터 돌미륵이 점점 자라나서 머리에 쇠꼬챙이를 꽂자 피를 흘린 뒤 영험한 기운이 사라졌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시릴 정도로 차갑던 ‘옻샘’

영탑사 아래에는 옻샘이라 불리던 자그마한 샘물이 있다. 옻샘은 옻이 올라 달아오른 피부가 다 나을 정도로 물이 차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어르신들은 “한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시릴 정도였고 물도 깨끗해 정화수로 썼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다 십 수 년 전 ‘영천’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비석을 세운 뒤 물이 변했단다.

마을에는 커다란 보호수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저수지 옆에, 또 하나는 영탑사 입구에서 수백 년 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기록에는 400년 정도로 표시돼 있지만 주민들은 천년도 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성하리 주민들은시립박물관 건립을 앞두고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김성삼 지도자는 “내년 시립박물관이 성하리에 문을 여는 것에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며 “마을 고령화로 점점 잊혀져가는 오랜 역사를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마을 주민대표]

“지역역사 올바르게 보존돼야”

면천면에서 유일하게 여성 이장을 두고 있는 성하리는 마을 주민들은 솔직, 순박하고 정겹기로 이름나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보니 젊은이들의 유입이 적은 것에 주민들은 걱정이 크다.

옛이야기를 가장 잘 알뿐더러 입담이 좋아 재미있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정재복 노인회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역사가 올바르게 잘 보존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왜곡되거나 잘못 이어지는 역사에 대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청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전설과 이야기가 사라질 위기에 있으며, 농촌일손이 부족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정숙 이장은 “마을의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어르신들이 여생을 활기차게 지낼 수 있도록 운동기구라도 보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