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골치가 아픈 단어다. 정신분석, 그리고 프로이트.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쉽지 않다.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
흔히 ‘얼떨결에’ 혹은 ‘무의식 중에’ 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우리는 잠을 자지 않는 모든 순간 깨어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신체적 각성과 정신적 각성은 차이가 크다.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깨무는 것, 혹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 등은 의식을 갖고 하는 행위는 분명 아니다. 그야말로 ‘그냥’하는 무의식적 행동이지만 내면 깊숙한 어느 곳에서 자리 잡은 본능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한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사고)=언어=의식’이라는 전통철학의 흐름 속에 프로이트는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킨 사람이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대표적인 표현을 들여다봐도 전통철학은 사고와 의식의 문제를 다뤘던 반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이드(무의식 혹은 본능, 욕망, 욕구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는 인간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규범, 규칙, 양심 등으로 일컬어지는 ‘초자아’의 억압을 받게 된다. 이는 곧 본능과 욕망이 거세당한 채 살아가야하는 ‘자아’를 만들어 낸다. 결국 자아는 사회화된 인간이라는 것.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연구한 건 히스테리를 연구하면서 부터다. 신체적 마비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꾸준히 그의 내면의 상처나 치부를 드러내게 만들었을 때 마비가 풀렸다고 한다. 결국은 몸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연구하면서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우리 자신의 욕망과 본능, 무의식을 아닌 척 외면할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삶과 사회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의식적 요구에 의한 사회변혁을 일으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평등을 예로 들면 차별금지법처럼 제도와 법이 선진적일 수는 있으나 시민들의 내재된 무의식 속에는 ‘밥은 여자가 차려야지’, ‘게이들은 역겨워’와 같은 무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겉으로는 체면상(초자아에 의해) 짐짓 아닌 척 하더라도 시민들의 무의식적 내면은 드러나지 않을 때 더욱 확고하고 완고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그래서 재밌다. 전통 철학자들이 했던 말, 그리고 하지 않았던 말, 할 수 없었던 말 사이의 그 보이지 않는 행간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