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여건상 송악읍의 중심이 되는 중흥리는 마을이름처럼 번영을 이뤘던 곳이다. 1914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면천군 중흥면의 소재지였다. 내년이면 면이 리로 바뀐지 100년을 맞는 중흥리는 크게 8개의 자연마을이 형성돼 있지만 무려 24개에 달하는 부락이 중흥리에 속해 있다. 지금도 중흥리에는 4개의 경로당이 각각 운영되고 있을 만큼 마을 단위로는 꽤 큰 경제 및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다. 아파트와 상가는 물론이고, 송악초등학교·파출소·우체국·농협·신협 등의 지점이 중흥리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역사 알 수 있는 자연부락

사하(寺下 또는 절아래)라고 불리는 1반 뒤쪽에는 숭학사라는 절이 조선시대 숙종 때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주춧돌이 남아 있는 이곳은 쇠털고지(쇠털꼴 풀만 무성해 가축방목장으로 이용했다고 함), 제비골(재 아래에 있어 ‘재밑골’에서 변형됨)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있다.

홍수골, 구억말 등이 포함된 중말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중심지로 중흥마을이 축약된 형태라고 하며, 새로운 시장이 섰다는 새장터는 앞으로 상권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언도 내려온다고 한다. 삽교천이 방조제로 막히기 전까지는 새장터 앞까지 조수가 드나들었다.

노루와 칡이 많았던 노루재, 칡사리 등 작은 마을이 있는 질마재(길마재)도 자연부락 중 하나다. 현재 8반인 해나지에는 덕대가 있었다. 덕대란 초상이 나면 염을 하기 전까지 시신을 안치했던 곳으로 음습한 기운 때문에 동네아이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덕대 앞을 지날 때는 막 달음박질 치고 그랬어.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빛이 잘 들지 않아 컴컴했으니까. 으슥하고 무서운 곳이어서 아이들은 다니길 꺼려했지.”

역사와 함께 사라진 세시풍속

중흥리와 석포리, 정곡리, 월곡리를 경계로 하는 송악산은 송악읍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송악지역의 영산이다. 산에는 서낭당도 여럿 있었는데 정월 대보름에는 볏가릿대를 세우며 풍년을 기원하고, 정월 그믐날에는 장승제를 올리곤 했다.

산꼭대기에는 150년이 훌쩍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다.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여겨지던 이 나무를 6.25 전쟁 무렵 전투 시 시야를 가린다고 베어버렸다. 항간의 소문에는 이 나무를 베어 가져간 사람이 곧 죽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송악산에는 용맹스런 장수의 형상을 한 장수바위도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낙들이 기도를 올리기도 했던 이 돌도 저수지를 막는 데 쓴다고 빼갔단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던 대동우물에서는 정월 열나흩 날이면 새벽에 조용히 나와 우물에 볏짚을 열십자로 두고 그 위에 맑은 물을 떠 아침밥을 짓는 데 사용했다. 새벽닭이 울면 남들보다 일찍 나와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복을 기원하며 물을 뜨던 이것을 ‘용의 알을 뜬다’고 표현했다.

박시양 전 이장은 “일제강점기와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면서 서낭당 등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철폐됐다”며 “모두 마을의 오랜 세시풍속이자 민속적인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어르신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마을인심이 옛날 같진 않지”

지금의 중흥리에는 약 3500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 기업 및 산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이주민 비율이 80%를 웃돈다.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원주민의 비율은 고작 15~20% 내외다. 세종그랑시아 아파트와 동부사원아파트가 위치해 있어 젊은이가 많은 편이지만 마을 일은 어르신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지태관 이장은 “지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젊은이는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인천으로 이주했고, 지금 남아 있는 토착민은 주로 노인들”이라며 “아무래도 전입·전출 인구가 많다보니 마을사람들 간 정이 옛날 같지 않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에요. 문도 걸어 잠그지 않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농작물도 몰래 훔쳐가기도 하고 인심이 흉흉해졌어요. 도시화로 마을이 점점 성장해 가고 있긴 하지만 옛날 마을모습이 그립기도 하죠.”(김영노 지도자)

우리마을 주민대표 “상권과 농업 함께 발전해야”

이종철 노인회장 - 현재 송악샘터작은도서관이 경로당과 함께 운영 중인데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어 복잡하고 주차장이 좁습니다. 큰 도서관 설치와 주차장이 확보돼야 합니다.

박시양 전 이장 - 마을이 도시화하는 한편 남아 있는 농민에 대한 보호도 필요해요. 타 지역에 살고 있는 토지주들이 농경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농민으로서 안타깝습니다.

지태관 이장 - 인구증가에 비해 상수도나 도로 등은 부족한 편이에요. 현재 당진동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역의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노 지도자 - 중흥리는 농업과 상업이 어우러져 있는 지역입니다. 도시화와 더불어 지역의 상업도 더욱 활성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