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남이 나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때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왠지 내 생활이 행복해지지 않게 되고 맙니다. 이때 불편한 마음의 뿌리에는 시기심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비교를 통해 생겨나는 긴장감을 잘 이용하면 자신의 현재 상황을 극복하는 축복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감까지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갖고 싶은데, 내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실망하거나 상대방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만 없었더라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한 거야’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순식간에 적대감이 산불처럼 온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불행한 마음에 흔들려 자정과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일입니다. 온 세상에 사람이 없었던 유일한 형제였습니다. 어느날 두 사람이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동생의 제사는 받으셨고 형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치 않은 부분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이유가 어찌된 일이건 그 문제는 뒤로하고 그 일로 가인은 동생에 대한 적대감에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동생을 향한 분노로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해 죄를 다스릴 것을 명령하셨지만 가인은 끝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들에 나가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악한 마음은 이와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한 피를 받아 생명을 나누며 태어난 형입니다. 동생을 돌보고 지켜줬어야 마땅한 형이 동생을 들에 나가 죽였던 그 사건은 그 시대로 멈춘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이 사건은 우리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형벌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기심은 열등한 사람이 상대방을 자신의 힘으로 넘을 수 없을 때 품게 되는 비열하고 잔인한 마음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반드시 끔찍한 파멸을 자초하고 만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익히 보아온 일입니다.
이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지역사회를 섬기겠다는 각오로 출사표를 내셨습니다. 주민의 한 사람으로 안심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은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스러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필연 누군가는 당락의 잔을 들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로 인해 일평생 친숙했던 이웃들이 미움이 되고 아픔의 대상이 되는 일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가장 축복된 사회는 서로 사랑하는 사회입니다. 서로가 하나되어 사는 사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에베소서 2장14절에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둘을 한 몸으로…”라고 화평과 하나됨을 이루시기 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자리 때문에 사람이 갈라서고 지역사회가 나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안아주며 패자는 승자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는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렵니다.
살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