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보면 수능부정에 연루된 어린 학생들이 얼굴을 가린 채 경찰관의 조사에 응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우리 사회가 시험 한번으로 평생의 진로를 결정짓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보니 아직 어린 그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점수를 높게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자녀들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이겠으나 어찌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 할 수가 있으랴.

얼마전 T.V에서 세계 경쟁력 2위라고 소개된 핀란드의 교육체계가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은 방학이 6개월이나 됐었다. 그 나라 아이들이 얼마나 자유스럽고 활기찬 성장기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오로지 일류병에 사로잡혀 평생을 가위눌림 속에 살아야 하는 아이들과 그들처럼 설원을 누비며 대자연의 일부로 생과 사를 함께하는 아이들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자연의 소중함과 인류애를 발양(發揚)할 수 있을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까스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는 더 이상 꿈을 품어볼 겨를도 없이 아파트 평수 경쟁에, 아이들 과외수업 뒤치다꺼리에, 그것도 모자라 조기유학의 광풍에 기러기 아빠로 생을 마감하는 이 한심한 사회풍조를 과감히 바꿔 나갈 수 있는 묘안이 없을까?

패자부활전이 보장되는 사회, 다시 말해서 한번 실패했어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재기를 꿈꿀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인 모험정신을 간직하며 살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이 사회가 온통 점수경쟁에 함몰되어 평생의 진로가 결정될 판인데 고득점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 것이 과연 저들만의 잘못이라고 누가 돌을 던질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의 일평생을 통하여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진짜 그런 사회를 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한때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그곳 교포들의 공통된 견해가 바로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미국이민을 꿈꾸었다는 것이고.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이거는 시작이 미약하면 평생을 꼴찌에서 헤매야 되는, 신분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사회가 아니냐 말이다. 그러다보니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것인데 뭔가를 좀 바꿔볼라치면 온갖 괴상한 논리를 다 동원해 편가르기에 영일이 없는 정치권부터 나서서 이 나라의 근간을 바꾸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권을 보면 말로는 개혁세력하면서도 뭐하나 제대로 바꿔나가는 게 없잖은가? 실제로 개혁을 하려면 당연히 가진 자 편에서의 손실의 감수가 따라야 하는데 우리나라 수구 기득권층은 조중동을 중심으로 철저한 다리걸기를 일삼지 않은가 말이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가진 자들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배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배금주의 세태에 대한 근본적 처방없이 교육을 논하다보니 우리나라 교육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가진 자들이 똥을 밟아 자손만대 일 않고도 부를 이전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은 뜯어고쳐야 한다. 한데 어찌 말로만 그런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으랴?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전 재산은 물론 조상의 제사 지내는 위상(位上)까지 처분, 지금 시세로 약 800여억원을 가지고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나중에 청산리 전투의 혁혁한 전과의 바탕을 만든 성재 이시영 선생과 그 가족들의 철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본보기가 참으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