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철저한 언론통제하에서 전해져 오는 광주사태(그당시의 표현으로)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30여년전의 일이 되어버리다니…

그후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계엄군의 주동자를 처벌하기 위해 열렸던 청문회에서 오로지 진상을 덮거나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당시의 신군부등 그 주도세력들에게 가졌던 분노를 나는 지금도 삭일 수 없다.

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으로 알고 있는데, 그 숱한 정황이나 의문에도 끝내 책임지는 사람없이 30여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

일개 사병이 총기사고를 일으키면 그 지휘계통에 책임을 묻는 것이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이다. 그런데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군이라는 조직이 그 국민을 향해 발포,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 엄청난 비극앞에 발포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고 오직 자위적이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우리의 현대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그날의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라고 했던가. 최근 한 영화를 보면서도 “세상에!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토록 조직적이고 잔인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언제였던가 우리나라 사법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직무유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천박한 무사안일의 사법정신이 아직도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지나 않은지 나는 해마다 5.18을 맞으며 생각하는 것이다.

당시 독기서린 눈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며 정의사회를 외쳤던 그 군사반란의 수괴가 지금도 전직대통령으로 예우받는 이 나라에서 과연 정의는 살아있는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법이 처단하지 못하면 민중의 정의가 나서서라도 처단해야 하지 않는가? 일제하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어갈 무렵 6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 당시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또를 처단하려 거사했던 강우규열사를 나는 기억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 안온한 환경에 젖게 되는게 일반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굽이굽이 역사의 고비마다 그 강우규열사처럼 일신의 안녕을 돌보지 않는 열사들의 희생으로 우리의 기상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 피는 이름없는 골짜기에서 말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피를 말함은 물론이겠지만, 한편으론 불의의 시대를 제거하는 추상같은 정의의 단죄에 의해 뿌려지는 피를 포괄하는 의미로 나는 생각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전후 프랑스의 역사가 그랬다던가?

이 화창한 5월 신록의 계절에 “미친소 너나 먹어”하는 청소년들의 발랄한 외침이 우리민족의 박동하는 젊음으로 느껴지는 요즘인데 30여년전의 불의했던 정권에 빼앗겼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그 바탕에 깔린 핏값을 다 치르지 못한 것같은 자괴감이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