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TV에서 각 당 대표가 나와 다음달 있을 총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자리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인사편중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 “참여정부가 관리하던 25000명의 인사자료를 넘겨주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4700만명 국민 중에서 25000명이면 0.05%인데 아하! 이 사람들이 0.05% 인사자료가 없어서 소위 ‘고소영-S라인’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인사를 했다는 말이구나. 다행히 부적격자로 낙마하긴 했지만 부동산투기 전력이 문제되니까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사람까지 나는 참으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대통령이 같이 일할 사람으로 뽑았다는 사람들의 면면에 정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심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여자를 겁탈하다 문제가 됐을 때 여성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되나?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길을 막고 때아닌 북풍한설이 가슴을 움츠리게 한다해도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이미 춘신(春信)이 묻어있음을 알 수 있듯이 얼마전 평양에서 벌어진 미국의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선율엔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의 훈풍이 실려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대북관계 개선에 미온적이던 한나라당내 보수적 인사들도 이젠 새로운 시각으로 소위 민족공동체의 패러다임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남북 축구대회에 우리나라의 애국가를 불러서는 아니 되고 태극기를 걸 수도 없다는 북한에서 미국 성조기와 나란히 인공기를 앞세우고 교향악이 연주되는 모습을 보며 주체를 내세우는 북쪽사람들의 협량을 탓하게 되면서도 이러다가 또 통일을 비롯한 우리의 문제에 우리만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지배세력들 입장에서 보면 혁명적 변화, 즉 남북이 하나가 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기득권 상실을 가져올 테고 그러다 보면 그들 말대로 원수의 나라와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게 뻔한 일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들 북한으로서 선택의 폭이 극히 한정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오로지 봉쇄정책을 비롯한 강경책에만 목소리를 높여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보낸 대북지원금이 핵개발이나 군사대국으로 가는 비용으로 전용되었을 수도 있음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달리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들의 사회가 붕괴라도 된다면 당장 중국이 조중우호협약을 들어 북한에 진주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때가서 우리는 한 민족이니 당신들은 물러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국제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여기에 우애가 없는 형제의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지만 자존심 하나 지켜오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형제에게 자존심대신 오로지 돈버는 일에 전념해서 이젠 힘쓰고 살만하게 된 형제가 그 곤고한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가는 모습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그 어려운 형제가 받은 도움으로 식구들 끼니 거르지 않게 하는 것이 도움을 준 입장에서 보면 최우선 과제로 인식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지켜온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있는 동안 주장해온 대북관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북미관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적어도 민족문제에 있어서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미국과 중국관계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의 돈독한 개선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통일은 없다고 대놓고 주장하는 남주홍이란 사람, 결국 낙마하긴 했지만 그런 사람을 통일부수장으로 임명하려 했던 우리나라의 대통령에게서 남북관계에 냉전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북미관계에 개선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어디에도 숟가락을 맘대로 놓을 수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등 대북강경론자들의 주장, 그리고 조선일보 등에 커다란 광고를 내며 김정일 폭정을 규탄하는 우리나라 개신교계 지도자들의 우려를 어찌 틀렸다고만 하겠는가? 다만 그렇게 우리끼리 시야비야하는 사이 우리는 또 들러리도 제대로 못서는 처지에 빠지게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출된 데는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음을 안다. 그러나 진정 이 나라가 경제만 잘 굴러가면 되는 나라인가? 설마 지금도 잘 살아보세 하는 마음으로 천박한 경제제일주의를 부르짖는 건 아닐 테지? 철학이 살고 문화를 아는 한민족을 위하여 좀더 깊은 성찰이 정치권에게 요구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