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늦은 시간, 주위가 캄캄할 때 혼자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가로등이 미처 비춰 주지 못하는 어두운 길에 무언가 물체가 보였다. 순간적으로 뱀이 아닌가 싶어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떨어져서 한참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 물체가 정확하게 보였다. 비닐 조각의 일부분은 땅에 묻히고 나머지부분은 바람결에 나부끼는 것이 어둠 속에서는 꼭 뱀이 머리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비닐임을 확인한 순간 뱀으로 잘못봐 일어났던 두려움, 놀라움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래 처음부터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가 이와 같다. 세상은 마음이 나타난 바요, 마음의 원리가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운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자칫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일어나는 생각들이 기정사실이라고 믿기 쉽다. 그래서 내 주견을 내려 놓지 못하여 상대와 부딪쳐 시비와 고통 속에 들어간다. 그런데 만약에 그 모든 선악이나, 시비, 감정, 고통들이 본래 비닐인데 내가 마음의 시력이 어두워 뱀으로 잘못봐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마음이 밝으면 비닐로 보이고 마음이 어두우면 뱀으로 보이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분하고 원망스럽고 밉고 싫은 생각이 일어나 잠을 못 이루고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괴로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르게 보는 일이다. 일어난 감정과 생각들로 인해 괴로워 할 일도 없으며 또한 그것들을 없애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도덕적 논리를 끌어와 맞춰보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쇼핑을 하고 참고 애를 쓰고 별 방법을 다해도 괴로움은 원하는 만큼 쉽게 사라져 주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고통과 괴로움은 부풀어진다. 눈덩이처럼 말이다. 마치 수렁에 빠졌을 때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을 하는데 그 살기위한 몸부림이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제대로 바르게 보는 것이다. 내 관념으로 인해 바르게 보지 못했다면 다시 정신을 차려 바르게 보면 된다. 실상을 바르게만 보고 바르게만 듣고 바르게만 생각한다면,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수한 일이 아니고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꿈에서 아무리 쫒기는 꿈을 꿔도 꿈에서 깨는 순간 그대로 평화롭지 않던가. 꿈인 줄만 알면 된다. 비닐인 줄만 알면 된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삶에서 이것을 직접 실행할 때 삶은 그대로 우리 모두의 로망인 행복이 된다. 뱀이 아니라 비닐이다. 그것을 일러주기 위해서 4월과 5월, 12월에 성자께서 오신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