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간다고 해도 그는 콧방귀만 뀐다. 대문을 열며 협박해도 붙잡지 않는다. 달밤에 쓰레기통을 울리며 홍합 부딪는 소리가 청아하다 못해 슬프기 그지없다.

내 취미는 장마당 구경이다. 이를 공사장 노동처럼 생각하는 남편을 애교와 협박을 동원하여  끌고 갔다. 한 양동이 남짓 팔다 남은 홍합이 먹음직스럽다. 장사와 눈이 마주치자 모두 떨어 이만 원에 가져가란다. 오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작은 봉지에 담던 장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큰 봉지에 모두 쏟더니 오천 원에 몽땅 가져가란다. 얼마 전 혼자되신 앞 집 할머니와 아래층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며 얼른 받았다.

홍합봉지를 들고 게걸음 떼는 내가 안 되어 보였든가. 뒤따라오던 남편이 쌀쌀맞게 봉지를 채갔다. 욕심이 아님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나눠먹을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내 오지랖이 존경스럽단다. 남편이 핀잔을 줘도 발걸음이 가벼운 걸 어쩌랴.

저녁을 먹고 싱크대에 홍합을 쏟았다. 시장에서 봤던 양보다 두 배는 많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방에서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남편이 뛰어왔다. 올무에 걸린 사냥감을 놓치면 바보지 싶었다.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당신 말 들을 걸 그랬다.’고 한걱정 풀어놓자, 인정 많게도 팔을 걷어붙였다.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일의 끝이 보이지 않자 웃음도 대화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소리만 적막을 깼다. 남편의 푸념이 시작되었다. 홍합으로 드릴 것이지 삶아 드릴 것까지야 뭐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힘들고 피곤하여 그냥 하자는 눈빛만 보냈다. 그러자 기운도 없으면서 오지랖만 넓다고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한 번만 더 핀잔을 주면 홍합을 버리겠다고 하자 남편은 정말 화가 났는지 맘대로 하라며 그만 손을 씻는 게 아닌가.

홍합을 삼켜버린 쓰레기통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늦도록 옷가게를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과거사까지 들먹여 하소연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그도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처음에는 조근조근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유리창이 흔들릴 듯 고성으로 변했다. 내 혹보다 그녀의 혹이 더 커 보이니 인지성정이던가. 잠시 후 평정심을 찾은 친구는 오늘 밤 반란을 일으키자 했다. 솔깃했다. 남편에게 친구랑 외박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내게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찜질방, 숯가마를 떠올렸다. 내 대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는 무인텔 입구에 차를 세웠다. 차가 객실까지 들어간다는 광고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궁금했다. 포크레인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있는 그림책은 봤지만 자동차가 호텔 객실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하지만 광고 카피와는 달리 주인을 만나지 않고 컴퓨터에 입력된 방의 정보를 찾아 입실하는 게 고작이었다.

서로 남편 흉보는 일에 열중하다 새벽에 잠들었다가 깨보니 친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교회에 간 모양이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인텔 주변은 사통팔달 뚫린 대로변이 아니던가. 게다가 돈이 없으니 무엇을 타고 집으로 간단 말인가. 내 구원자는 남편 밖에 없었다. 방 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렸다. 이십 분도 채 안 되어 그가 나타났다.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바라보니 되려 그가 부탁한다.

쉰 넘어 갱년기도 아닌 사춘기를 맞은 듯 싶단다. 바깥세상이 궁금하면 자기와 함께 나가고, 친구들과 밤새고 싶으면 화내지 말고 기분 좋을 때 허락받고 나가란다. 홍합을 닦으며 핀잔주던 좀팽이가 아니었다. 그는 품 넓은 오빠였고,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할만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