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도는 보살로서 살아가는 길이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줄임말로 보리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살타는 존재, 유정, 중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리살타 즉,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고 향해가는 존재를 뜻한다.
이런 보살이 실천해가는 길 또는 방법이 보살도인데 보살도는 한마디로 ‘자리이타 자각각타’이다. 보살은 나와 남이 다 같이 이익과 행복을 얻는 길을 가고, 마지막 괴로움이요, 최고의 괴로움인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해탈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는 존재다.
불교를 믿는 자는 이러한 보살의 도를 서원하고 실천해 가는 자를 말한다. 보살은 이제 막 보살도를 실천하겠다고 발심한 초심자에서 부터 이미 깨달음을 성취했으나 열반에 들지 않고 다른 존재 즉, 중생들의 이익과 성불을 위해 보살도를 행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이 있다. 또한 문수보살 등 이상적인 대승보살 및 이미 깨달음(성불)의 경계에 이르렀으나 중생들의 성불을 돕기 위해서 스스로의 성불을 미루고 단 한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 자가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상에는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 많은 존재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그렇다고 자비를 베푸는 이 존재들을 보살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천인 ‘영원한 실체로써 나’라는 견해에서 나와 남이 빠져나오게 하려는 마음과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나와 남의 이익과 행복과 깨달음을 위한 자비와 지혜를 양 날개로 삼아 실천해 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통한 생사해탈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은 나고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 하면서 육체적 고통, 생존의 불안, 두려움, 슬픔, 우울, 절망, 번뇌 등의 온갖 괴로움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온갖 괴로움을 해소하는 길이 생사의 장애에서 벗어남(해탈)이고, 그 해탈은 모든 존재가 스스로의 본래 모습을 깨닫는 것에 달려있다. 그래서 조건 따라 형성된 이 세상과 그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들은 다 무상하고 괴로우며 ‘나라고 할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 ‘나’라고 하는 절대적인 이기심과 ‘나의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 속에 중생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생각이 ‘영원한 실체가 있고 그것이 나다’라는 견해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며, 희노애락하는 모든 순간 및 죽고 다시 태어나는 매 순간에도 이 견해가 항상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항상 이기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라는 진리에서 조금만 중심을 잃게 되면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고 그 결과는 탐욕과 분노로 나와 남을 해치고 세상을 해치게 된다. 이기적인 나가 있는 한 지금의 자비가 미래에도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와 남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보살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