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당진에 사는 초등학교 동기가 20~30년생 배롱나무 한 그루를 가져다가 심어주기에 정성들여 물을 줬더니 죽은 듯하던 가지에 파란 잎이 돋아나고, 한여름에는 빨간 꽃이 예쁘게 피었다. 한여름 뙤약볕을 가려줬고, 폭풍우를 꿋꿋하게 막아 주고서도 태연하게 뜰을 지키던 푸름이 어느덧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백세가 가까운 친구의 홀어머님께서 엊그제 갑자기 작고하셨다. 친구는 문득 ‘이제 이 집안에서 가장 늙은이가 나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단다. 여름날 땀을 벌벌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조롱하던 베짱이가 한겨울이 닥쳐서야 세월에 속은 것을 깨닫는 것처럼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항상 변함없이 흘러가는 게 세월이란 걸 알면서도 무심결에 세월에 속고 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견해로 판단해 몸과 입과 뜻으로 실행하는 모든 일들이 인연이고 업이다. 업을 쌓아 두는 것이 업장이고 업장에서 자란 과보가 현재의 내 삶이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은 자기 자신이 행한 업의 시행착오에서 얻은 결과에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에서 오는 혼미한 번뇌다.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망상으로 번뇌와 인연을 맺는 것이 고통의 씨앗이며, 그 인연에 따라 자기가 실행하는 업이 고통의 본체다. 이러한 번뇌와 고통의 싹은 어리석은 마음 속에서 돋아나는 것이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실행하는 곳에서 자라는 것이며 거기에서 맺어지는 결과다. 그러므로 나에게 속은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살게 된다. 공동사회는 위계질서를 위한 윤리, 도덕적인 이념이나 문화적인 생활 방식이거나 경제적인 문제 등이 복잡하게 발생한다. 생활하는 중에 상대방과의 의견을 소통하고 자기의 뜻을 성취하는 묘미와 즐거움도 맛보게 되고 공동사회의 생활법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익숙해질수록 자신감이 붙게 되며 홀로 서고자 하는 욕망도 생기면서 자기를 우선으로 간주하는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한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어야 하고, 자기의 꿈을 현실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환경이 변화하고 세상이 변한다.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환경에 속는 것이고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이라고 탄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父母妻子(부모처자): 부모님과 부부나 내가 낳아 기른 자식이나
和而不同(화이부동):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나와 똑같은 것은 아니니
修己治人(수기치인): 자기자신을 잘 수행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至公無私(지공무사):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라
세월에 속고 나에게 속고 환경에 속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속고 싶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찾아 다스려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현실을 직시하며 사는 것이 속지 않고 잘 사는 길이다. 나에게서 부글거리는 탐내는 욕심(貪心)과 원망하고 화를 내는 마음(瞋心), 어리석은 마음(恥心)을 버리고 허황된 꿈을 집착하지 말고 나를 살펴 나의 마음을 다스려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속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잘 사는 인생길이다. 이것이 도(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