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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라구나에 위치한 고아원 ‘평화의 집(Peace Home)’ 원생들과 교사들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당진을 방문했다. 1년에 한 번씩 평화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던 가곡환경과 당진시대와의 인연이 이어져 이번 ‘한국 초청 프로젝트’가 이뤄진 것이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던 서정주 시인의 노래처럼 평화의 집 아이들 역시 길 위에서 모진 바람을 맞고 자랐다. 그런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는 평화의 집 교사들과 함께 지난달 26일 하룻밤을 지냈다. 찬바람 부는 겨울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그들과 나눈 이번 ‘밤샘 대화’는 홈스테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카페 아미띠에 윤미경 대표의 집에서 이뤄졌다.

가난한 어린 시절 딛고 일어서 “돈 보다는 사랑과 봉사”

100달러. 한국 돈으로 약 11만 원 남짓 되는 돈이다. 누군가에겐 한 끼 식사비일 수도 있고 운동화 한 켤레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한 달 꼬박 일하고 나서야 손에 쥘 수 있는 월급이다. 100달러, 평화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필리핀 고아원 교사들의 월급이다.

평화의 집에는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들이 오는 곳이다. 길에서 살던 아이들은 평화의 집에 의해 직접 구조되기도 하고, 경찰이나 정부에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도 한다. 여자 아이들은 라구나 지역에 위치한 평화의 집에, 남자 아이들은 까비떼 지역에 있는 은혜의 집(Grace Home)에 보내진다.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한 필리핀에서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나, 노숙을 하는 가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대부분 천주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피임을 꺼리고 있어 가난한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곤 한다.

“아이들 보며 늘 울어요”

평화의 집에서는 이렇게 부모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7명의 교사들이 돌보고 있다. 평화의 집은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교사들도 모두 여성이지만, 은혜의 집과 평화의 집을 오가며 차량 운행을 하는 리차드만이 이번에 한국 방문단 중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리차드는 교사 그레이스의 남편이기도 하다. 평화의 집에서 함께 일하는 두 부부는 버려진 아이들에게 부모가 돼주고 있다.

그레이스는 “평화의 집은 또 다른 나의 가족”이라며 “돈과 상관없이, 오직 봉사하는 마음 뿐이다”라고 말했다. 교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크리스틴은 이제 겨우 26살이다. 윤미경 씨가 이들에게 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여름옷을 건네자 방 안으로 쏙 들어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와 포즈를 잡는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진 그를 보고 다른 교사들은 “평화의 집의 21번 째 원생”이라고 말한다.

평화의 집 교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테레시타다. 그는 평화의 집 아이들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없이 가난한 가정에서 살았던 그는 “아이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 같다”며 “나에게도 상처가 있지만 내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의 집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보면 늘 눈물이 흐른다”고 덧붙였다.

캐서린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 나를 본다”며 “아이들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재능을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난하고 상처 입은 교사들이 평화의 집 아이들을 위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평화의 집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로즈는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랑을 되돌려 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평화의 집에서 일하게 됐다”면서 “내 삶은 그들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초청…빈말인 줄”

지난 여름, 가곡환경에서 평화의 집에 봉사활동을 하러 왔을 때,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교사들은 이 말을 믿지 못했다. 그저 빈말이려니 했다.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만큼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을 꿈꾸고 동경하지만, 필리핀과 물가 차이가 심해 쉽게 오지는 못한다. 한 달에 고작 100달러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더구나 출생 증명이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고아들이 외국을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국에서 연락이 오고,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해 가며 한국에 가는 일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단다. 이들은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해 “너무나도 놀라운 일,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방문에 대해 로즈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평화의 집에서 일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던 교사들에게도 너무나 값진 경험이 됐다”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받은 크나 큰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