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 신평면 도성리 세안주택
사고 싶은 고추
어릴적 나의 몸에서는 소똥냄새가 났다. 금방 목욕을 하고 난 이후라도 그 냄새는 늘 따라다닌다. 언제부터인가 철이 들기전 예닐곱살 때부터인듯 싶다. 당시 국민학교를 입학할 무렵 빈농인 집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은 한우를 키우는 일이었다. 사립문 옆에는 마굿간이 있었는데 많으면 다섯마리 정도이고 최소한 두 세마리의 소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가 파한 후 집에 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소를 몰고 가까운 야산으로 가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둘째딸인 나는 이 일이 너무 싫었다. 등이 푹꺼진 소가 빵빵하게 배를 채울 때까지 그 무료함을 달래기란 소똥냄새보다 더 싫었고 그럴즈음 하나님은 왜 여자와 남자를 만드셨을까? 이왕 만드시려면 공평하게 만드시지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을까? 아직 어린 나이지만 여자란 큰 소리를 내어도 안되고 밥상에서 밥을 먹어도 안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내 가슴에 자리잡은 순간부터 이런 궁금중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삼대독자 집안에 언니나 아래 여동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둘째딸인 나는 늦게 얻은 남동생에게 베풀어지는 모든 것들이 어린 나의 의식속에 굴절된 경험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흥, 할머니는 여자 아닌가’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남동생 밥그릇 속에 담겨지던 하얀 쌀밥들... 허멀건 씨래기(우거지)죽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면서도 눈길은 남동생의 쌀 밥그릇을 떠날줄 몰랐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여자는 많이 배우면 팔자가 세어서 안된다’는 할머니의 억지논리에 햐얀칼라의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부러워 입으로 눈물을 삼켰고 그후로 소들과 나는 친구가 되어 버렸다. 친구인 소들에게 여물주고 죽 끓여주는 것은 그런대로 할만하지만 소똥을 주워다 말려 땔감으로 쓰는 일을 할 땐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소똥냄새로 채웠을 것이다. 나의 마음만큼이나...
나는 참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싫었다.
가끔 동네 어른들이 나를 보고 “하나 달고 나오지 쯧쯧... 하나 달고 나왔으면 저 고생을 안할텐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나도 고추 하나 사서 달아줘 응. 나도 남자할거야” 울며 떼쓰다 빗자루로 맞은 그 자리에 아픔하나 얹혀있는 것 만큼 남자가 되고 싶었다. 고추를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여자의 아픔을 안다.
며칠전 TV에서 여자들이 먼저 실직대상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똑같이 공부하고 같이 입사한 직장이라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먼저 쫓겨나고 나중 진급되는 이런 사회가 난 밉지 않다. 그 이유는 나의 할머니와 같은 여자이면서 여자를 싫어하는 이상한(?) 가치관이 만들어낸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사회가 남자위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기엔 나의 머리가 너무 커버렸다.
어릴적 남동생의 책가방 속을 들여다 보고 또 보고 학교 갔다 오면 아무렇게나 훌쩍 집어던져 놓은 교복을 몰래 입어보고는 나도 가야했다. 학교를... 그리고 배워야 했다. 그 길만이 살길이기에 시골에서 소나 키우는 처녀농군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며칠을 밤잠 설치며 계획한 멋진 탈출을 시작하던 날 서울로 가는 밤기차를 탔다. 살아야겠기에,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기에 선택한 그 길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잘한 일 같다.
무작정 나선 서울생활이 그리 쉽진 않았지만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공순이로 밤에는 멋진 교복을 입은 어엿한 여학생으로 살기까지 참 많은 날을 울었다. 이제 인생의 사십계단을 뛰어넘고 보니 여자는 결코 약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이 땅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굳이 여성 상위시대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환경을 딛고 개척의 길을 달리는 많은 여성들이 있어 희망의 바람을 일으킨다. 나 또한 유년의 아픔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어 독학의 어려움도 이길 수 있었고 지금은 멋진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나의 살아온 세월, 여자이기 때문에 더 부지런히 살아왔고 나의 딸들이 나처럼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똥냄새로 화장을 하던 그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이제 나에겐 세 딸이 있다. 첫째 딸은 북일여고 재학중인데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하숙을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힘겨워하지 않는 대견스러운 모습이 엄마를 감동시킨다. 저의 꿈대로 1년 후면 고려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후는 멋진 판사가 될 줄 의심치 않는다.
또한 둘째 딸은 고1이다. 큰 아이와 연년생이라 키울 때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너무 예쁘다. 예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램을 잘 아는 둘째 딸은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수가 되겠단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라 정말로 멋진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귀염둥이 세째 딸이다. 옛날 어른들은 세째 딸은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라는 말이 꼭 맞는 것일까. 아빠를 빼닮은 세째는 학교에서 공부도 1등이다. 얼마전에는 당진군 경시대회에 나가 아쉽게 5등을 하긴 했지만 어릴적 별명대로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박사임에 틀림없다. 엄마인 나는 세째 딸이 커서 훌륭한 의학박사가 되길 바란다.
언제인가 딸 셋을 데리고 목욕탕을 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평소 습관대로 아이들을 불렀다. ‘판사! 교수! 박사’ 옆에 계시던 어떤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원, 아이들은 예쁜데 이름이 이상하구나.”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때 오히려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나 자신이 밉지 않다. 몇년 후면 큰 딸은 판사가 될 것이고, 둘째는 교수가 될 것이며, 세째는 박사가 분명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일터로 나간다. 내 딸들이 펼쳐나갈 멋진 세상을 만들기 위해... 봄 아지랭이 저너머 유년의 기억속에 구수한 소똥냄새가 베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