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전으로 인한 화재 발생
집 잃고 마을회관 전전…막막한 생계
한순간의 화마가 일생의 터전을 집어 삼켰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는 말이 미안할 정도로 화재는 가족의 삶을 송두리채 앗아갔다. 화재가 발생한 송악읍 기지시리 세종사진관의 한승교 씨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며 주름진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화재는 지난달 25일 오후 4시 50분 경 발생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에 있으나 현재 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짝’ 형광등, 문 열자 불길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잠에 든 둘째 아들(29)이 잠에서 깼다. 출출해진 빈 속을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끊이고 있을 무렵, 형광등의 불빛이 깜빡였다. 부엌문 밖 거실에서는 ‘탁탁’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들이 부엌문을 연 순간 이미 거실까지 불길이 번진 뒤였다.
아들은 안방에 있던 아버지 한승교(69) 씨를 데리고 작은 방 창문을 넘어 밖으로 대피했다. 아무 것도 챙길 수 없었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겨우 집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와 1시간 여 동안 타 오르는 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아내는 당일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었다. 화재 소식에 그는 기절과 함께 순간 얼굴에 마비가 찾아올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는 들떴던 야유회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잿더미로 변해있는 집을 본 순간 다리가 풀리고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잿더미로 변한 사진관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 씨의 아버지 사진은 흔적마저 없었으며 어머니 사진은 검게 그을려 벽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다. 또 두 아들의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들과 유치원 졸업 사진은 검게 그을렸다. 온 유리는 깨져 나뒹굴었으며 욕조와 변기 형태를 보고 화장실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진관은 더욱 심했다. 카메라 5대 중 가장 큰 카메라의 밑동만 남겨두고 흔적도 없이 재로 변했다. 또 암실과 출력기 등은 알아볼 수 없이 망가졌다. 목조로 지어진 오래된 사진관은 천장마저 뚫린 채 붕괴 위험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잃어버린 삶의 터전
이곳은 말 그대로 그들의 삶 터였다. 이집에서 한 씨와 그의 두 아들이 태어났다. 또 한 씨의 어머니가 생을 마감한 곳도 이곳이었다.
1948년에 외동아들로 태어난 한 씨는 그가 3살일 무렵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인해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어머니가 바느질로 품을 팔아 그를 키웠다. 기지초와 송악중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카메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상경한 한 씨는 1971년 그의 나이 24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세종사진관을 문 열었다.
그는 “당시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 후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들을 낳아 큰 욕심 없이 살았다. 평생 사진관을 운영하며 셔터와 반짝이는 플래쉬 속에 누군가의 추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화마는 한 씨의 추억을 모두 빼앗아갔다.
“남은 것이 없네요”
일터와 집을 모두 잃은 한 씨의 가족은 현재 기지시리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이 전부일 정도로 모든 것이 불에 탄 한 씨의 가족은 이웃주민들과 마을, 송악적십자로부터 옷과 쌀 등을 지원 받아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잿더미 속에서 남은 물건들을 찾고 있지만 한 씨는 “다 타서 없다”며 “건질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현재 불 속에 그을린 속옷 등만 세면대에서 겨우 빨아 말려 사용하고 있다.
한 씨는 앞으로가 더욱 암담한 상황이다. 화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든 실정이다. 한 씨는 “카메라와 출력기 등 사진관 기계들이 가족의 밥줄이었다”고 말했다.
“맨발로 서서 불에 타고 있는 집을 보고 있는데 미칠 것 같았습니다. 다 잃어 버렸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정말 암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