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로 측백나무 울타리 치듯 아이들이 서있다. 언 듯 보였지만 덩치 큰 녀석 하나를 중심으로 몰려있다. 봄이라지만 연못물은 아직도 차다. 있는 힘껏 소리쳤다. 들고 있던 방망이로 운동장을 두드리며 엄포도 놨다. 흩어질 기미는 전혀 없다. 칠십 노구를 앞세워 바람처럼 달렸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뛰었다. 지난봄에 터졌던 일이 어제 일인 양 가슴을 훑었다.

지난 해 신학기 때의 일이다. 봄바람에 훈기가 돌자 닫혔던 교문이 열렸다. 겨우내 얼었던 연못도 따뜻한 햇살이 들었다. 발가락이 간질거려 비비적거리던 송사리도 햇살놀이를 나왔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도 연못가를 맴돌다 햇살바라기하는 송사리 떼를 보았다. 아이들 눈에는 손가락

보다 작은 녀석 몇 마리 쯤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보였다. 몇 녀석이 물속에 손을 넣었다. 송사리는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몇 발짝 옆으로 슬쩍 옮겨갔다. 그쪽으로 좇아가 손을 넣으면 ‘나 잡아 보란 듯’이 본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발만 동동 구르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찰라 특수반 아이가  뛰어들었다. 다행이도 연못은 깊지 않아 감기치레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학교 지킴이 할아버지의 입장은 달랐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특수반 아이가 연못에 뛰어든 것이다. 자책감이 이만저만 드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는지 속옷까지 다 젖었다. 새파랗게 언 입술과 ‘누가 밀어 붙인 것이 아니냐’는 보호자의 질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연못은 학교 정문 우측에 있다. 어른 무릎을 약간 넘길 정도의 깊이여서 유치원생이 빠져도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교문 뒤 후미진 자투리땅을 활용하여 만들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수업시간을 활용하여 선생님과 함께 연못의 생태를 체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소나무 한 그루가 연못의 나이를 짐작해 주는데 10년 정도 된 듯싶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좀 많은 아이들이 연못 주변에 모여 들었다. 지난 해 일이 떠올라 걱정은 되었지만 후문 쪽 정찰이 시급하여 얼른 한 바퀴 돌고 연못을 보았다. 황사 때문에 자세히 보인 것은 아니지만 좀 전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에둘러 있다. 겹겹이 쌓인 꽃잎 같다. 순식간에 바람에 휘어지는 나뭇가지처럼 아이들이 한쪽방향으로 휩쓸린다. 그 사이로 덩치 큰 녀석이 보인다. 녀석은 연못 여기저기를 휘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잡히면 혼쭐을 내리라 벼르고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달려가도 몇 명의 아이들이 돌아볼 뿐이다. 다른 때 같으면 ‘연못 속 송사리 떼’ 흩어지듯 도망치더니 오늘 따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가 보다. 드디어 연못을 휘젓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잘못 봤겠지. 눈꺼풀을 여러 차례 닫았다 열어도 분명 학생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교장선생님이었다. 개구리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담임이랑 살펴보도록 올챙이를 잡아주었던 것이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자리를 피한 후 몇 분이 더 지난 뒤였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간사할 줄이야. 그가 누군지 알기 전까지는 말썽꾸러기, 천방지축, 문제아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을 내리라 작정했다. 연못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평생도록 떠올리지도 못하게 조치하리라 마음먹었다. ‘아이가 이렇게 되도록 지킴이는 뭐했느냐’고 타박할 부모의 모습도 상상했다.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천만다행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연못 사건 이후나 이전이나 같은 사람이지만 존경의 깊이가 달라보였다. 추운 날 제자를 위해 바지를 걷어붙였다 생각하니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그의 옆에 서면 따뜻한 봄 향기가 풍길 것만 같다. 봄바람에 귓불이 시려도 연못에 손 담그신 그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가슴 한편에 따스함을 저장하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따뜻하게 품으리라.

올챙이와 송사리 잡기 등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연 한 조각을 안겨주신 교장선생님도 뿌듯했을 것이다. 사랑으로 배불렀을 것이다. 오늘따라 퇴근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아직까지도 사죄드리지 못한 지킴이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그와는 정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