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메뉴는 부드러운 거품이 있는 카푸치노와 거품이 없는 카… 아이고 또 기억이 안 나네. 커피도 잘못 뽑은 것 같어.”

한 명씩 나와 커피를 내린다. 심사위원을 자처한 두 명의 어르신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평가한다. 사실 여기저기 실수투성이다. 영어 표현이 가득한 커피 이름을 외우지 못해 버벅이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도 바로 허리춤에 끼어 넣은 답안지를 꺼내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때로는 아메리카노를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을 때도 있다. 다 만들고 나서야 “에구 잔이 잘못됐구만”이란다. 그래도 커피를 만드는 그 순간에는 긴장감과 동시에 행복함이 깃들어 있다.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또 까먹는 나이다. 어느덧 검은 머리에는 흰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얼굴 곳곳에는 깊게 주름이 팼다. 하나를 외우면 둘을 까먹어 곳곳에서 한숨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이내 깔깔깔 박장대소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그렇게 이들은 새롭게 다가올 제2의 인생을 커피로 맞이하고 있다.

당진시니어클럽(관장 임미숙)에서 지역 내 60세 이상 노인 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실버 바리스타 양성 교육 사업 ‘나도 바리스타’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지난 1차 필기시험에서 8명의 어르신이 합격의 영광을 안았으며 오는 7월 말 경에 있을 실기시험 준비에 한창이다. 실버바리스타 양성과정은 노인 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총 14주의 이론과 실습교육 과정을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취업까지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하반기에는 시장형 사업의 일환으로 실버카페까지 개소할 계획이다.

실버바리스타 과정 정인근(원당동·62) 반장은 “그동안 전업주부로서 생활하며, 늦둥이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바리스타를 꿈꾸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제라도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너무 기쁘고 보람있다”고 말했다.

■실버 바리스타 수강생

강은정, 김기화, 김수길, 두용분, 송정남, 신창재, 안경숙, 왕현정, 이혜남, 장선임, 정인근, 조용희, 조항균

[미니인터뷰] 원당동 송정남 씨

“나이는 숫자에 불과”

다른 사람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서도 앞에 나가 유심히 지켜볼 정도로 집중력을 다해 열강하는 수강생인 71세의 송정남(원당동) 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송정남 씨는 가구 사업을 이어오다 3년 전에 정리했다. 함경도 청진 출신으로 6.25 전쟁 반발 당시 피난길에 오르며 한국을 찾았다. 이후 서울에서 생활하다 큰 딸이 살고 있는 당진을 찾은 지 벌써 1년이 흘렸다. 그동안 그는 당진시노인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여가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당진시니어클럽에서 실버바리스타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접했고, 평소 커피를 좋아했었던 그에게 좋은 기회로 다가와 정식으로 바리스타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공부하면서 자꾸 잊어버려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열심히 했다”며 “공부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옆에서 ‘젊었을 때 이렇게 공부하면 고시도 합격했겠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원두 커피 전도사가 됐다는 그다. 그만큼 커피 만드는 것이 재밌고 늦은 나이임에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그는 “지금 공부하면서 종종 ‘나에게 열정이 아직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남은 시험을 잘 치러 실버카페 운영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원당동 안경숙 씨

“꾸준히 하면 되더라”

필기시험에서 수강생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안경숙(68·원당동) 씨는 6년 간 요양보호사로 활동해 왔다.

몇 년 전 우연히 TV에서 노인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지만 당진에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꿈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던 찰나 당진시니어클럽의 실버바리스타 과정 모집을 듣고 단번에 등록까지 마쳤다. 평소 저녁 시간, 식사를 마치면 TV 드라마를 보다 잠에 들기 일쑤였지만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2~3시간 씩 공부한다고. 그는 “외국어를 잘 못해서 커피 이름이 안 외워질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가능해지더라”며 “못할 것 같았던 것을 이뤄내니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안 씨는 “배움에 있어 나이는 상관없다”며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하루하루 보람 있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