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다. 의열단의 무장독립투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이 1000만 관객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민중의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립운동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1350년 전에도 백제가 패망하여 나라를 뺏긴 백제유민들이 벌였던 독립운동이 있었다. 백제유민들의 독립운동을 역사는 ‘백제부흥운동’이라 부른다. 백제유민들의 처절했던 백제부흥전쟁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당진을 비롯한 내포지역에서 전개되었다.

지난 6일 당진역사문화연구모임 회원들과 함께한 내포지역 답사단은 백제부흥군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 여행을 다녀왔다. 그 첫 장소는 청양군 정산면 소재 두릉·윤성이다. 덕산의 향토사학자 박태신 선생님의 안내로 시작된 두릉·윤성은 공주와 부여에 있던 나당연합군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최전선의 전초기지였다. 가파를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선 전망이 좋아 멀리 공주와 부여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고, 금강이 가로막혀 방어하기에 좋았을 것임은 우리들 눈에도 그대로 보였다.

두 번째 찾은 곳은 청양 장평에 있는 ‘두솔성’이다. 문무왕이 항복한 백제와 왜군의 목숨을 살려주는 자비를 베풀었다 하여 일명 ‘자비성’이라고도 불린다. 두솔성에서는 관심이 묘 자리 쓰는데 모아졌다. 청양 일대에는 왕을 내는 두 자리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유명한 역술가가 말했다고 한다. 그곳을 서로 찾으려 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 누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조상 묘 자리를 옮겼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면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권력을 향한 유명 정치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회원들의 관심 또한 자식이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두솔성 입구에 평상이 있어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산에 올라 유적을 돌아보니, 배움의 기쁨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아울러 산에 올라 먹는 점심 맛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맛이 좋았다.

두솔성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에 있는 ‘주류성’이다. 겹겹이 산으로 싸여 대부동 분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옛 지명이 ‘얼방면’이다. 백제는 왕을 ‘어라하’라 하였는데 ‘얼방’은 왕이 살던 곳이라는 뜻이다. 백제 패망 후 백제유민들은 복신을 중심으로 이곳 주류성에서 나당연합군에 항거하였다. 복신은 왜국에 있던 부여풍을 왕으로 모셔왔는데 그가 바로 백제 마지막 왕 ‘풍왕’이다. ‘풍왕’이 왕성으로 삼아 백제부흥운동을 벌였던 곳이 바로 이곳 주류성인 것이다.

주류성에 오르니 왕성에 걸맞게 규모가 매우 컸다. 멀리 북쪽으로 임존성 성벽이 하얗게 보였다. 그 옛날 이곳에서 주류성과 임존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해 싸웠을 것이다. 주류성이 있는 대부동 분지는 들어오는 입구가 좁고 산이 깊어 방어하고 지키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땅이 좁아 3만이 넘는 백제유민이 장기간 거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풍왕은 ‘피성’으로 천도하게 되는데 ‘피성’은 오늘날 면천 ‘몽산성’이다. 1998년 홍성군의 의뢰로 상명대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백제 이전 시대부터 백제시대까지 유적이 나왔다. 산성 깊숙한 곳에 왕궁으로 의심될 만큼 큰 규모의 건물터도 발굴되었다. 몽산성 역시 백제시대 성터임이 밝혀졌다.

우리는 마지막 답사지인 ‘임존성’에 왔다. 임존성은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봉수산 정상에 있는 산성이다. 임존성은 웅장하기가 만리장성을 보는 듯하고, 가파르기가 백두산을 오르는 듯 했으니 문무왕이 이끄는 신라군이 한 달을 공격했어도 함락하지 못할 만큼 천혜의 요새였다. 임존성은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왜군이 오늘날 석문면 장고항 앞바다에서 나당연합군에 전멸한 이후 백제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결국 당은 한때는 백제부흥군의 동지였던 ‘흑치상지’와 ‘사타상여’에게 군사를 주어 임존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임존성을 지키며 끝까지 저항하던 ‘지수신’은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달아났지만 당나라에 항복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지수신’과 백제부흥군의 나라사랑과 저항정신은 오늘날까지 면면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포지역에는 친일 반민족행위자도 있었지만, 유난히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하물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독립운동가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역사는 결코 지난 이야기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지난날을 살아간 사람들의 피와 땀이다. 이번 내포지역 백제부흥군 유적답사는 그래서 매우 뜻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