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살률 세계 1위, 술 소비량 세계 1위, 십대들의 불행지수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등을 보면 그러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의 지능지수, 수학능력시험 등에서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우수한 민족임을 증명하는 통계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등교육이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과 암기식 평가로 결국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것은 옛말이고, 이제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률이 50%에 불과하다면 한국교육이 중병에 걸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 정보와 지식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교육은 그 한계를 선언하고 있다.
2012년 인공지능 ‘왓슨’은 인간과의 지능대결에서 이겼고, 인공지능 ‘도로보쿤(東ロボくん)’이라는 로봇은 2015 대입 모의시험서 일본 국공립 33개, 사립 441개 대학에서 합격 가능성 80% 이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2021년까지 일본 도쿄대의 입시 돌파를 목표로 한다고 일본국립정보학연구소는 발표했다.
KBS에서는 2015년 11월 5일 <명견만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인공지능시장 투자규모가 2013년도 8억 달러에서 2015년도 370억 달러로 45배 이상 급상승했다고 방영했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시대는 아는 것에서 ‘알아내는 것이 힘’인 시대가 되었다. 주입식과 암기식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 우리의 학교 교육과 같은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1800년대 프러시아 지배 계층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가 원하는 교육을 위해 교재와 제도를 만들고 통일된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이 교육의 패턴은 영국에서 미국, 미국에서 일본으로 식민지 교육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고 주입식 교육과 암기식 평가는 서열을 만들었다. 서열은 마치 자기의 한계며, 그 평가가 내 삶이요 수준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한국 최고 대학에서 A학점은 교수강의를 토씨도 하나 바꾸지 않고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비결이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 보면 왜 학교생활에 부적응하는 한국 학생들이 늘고, 10대들의 불행지수에서 OECD 국가 중 불명예스러운 1위를 했는지, 왜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의 머리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는 ‘알아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창의력과 주도력을 무력하게 하는 교육에서 알아내는 교육은 인지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인지력 없는 창의력은 있을 수 없다. 인지력은 암기와 주입식 교육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생각하고 묻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유대인의 질문학습법이 바로 그 예다. 유대인의 질문학습법보다 진화된 이해, 사고, 표현이 도구가 되는 ‘3KEY 인지기술’이 인공지능시대의 교육학습법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